1.멀뚱히 서있는 사람들.

 

 

야구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저자는 야구란, 정적인 구기 종목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구기

 

종목가운데 시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 스포츠도 야구다. 야구 중계를 보고 있노라면 야구 선수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필드 위에 그냥 멀뚱히 서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농구나 축구처럼 경기 시간 내내 필드나 코트 위를 뛰고 달리는 것과는 사

 

뭇 대조된다. 혹자는 야구는 운동신경 떨어지는 사람도 할 수 있는 게으른 스포츠, 뚱뚱한 사람이나 하는 스포츠라는 인식

 

이 크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마치 씨름선수나 스모 선수 같은 야구 선수도 있다. 더 나아

 

가 뚱뚱한 것이 유리한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런 주장은 야구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왜 멀뚱히 서있는가에 대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야구선수들은 그 시간동안 수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수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응원하고 있는 팀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있다고 가정하자. 외면적으로 봤을 때는 그는 배트를 어깨위로 들

 

어올리고, 뒷발을 팍팍 차고, 앞에 서있는 투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 상황을 본다면 그저 타자가

 

공을 치기 위해 투수랑 눈싸움이나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기 쉽다. 상대팀 투수도 한껏 눈을 부라리며 타자 쪽을 쳐다보고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타자는 무의미한 투수와의 눈싸움 대신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경우

 

의 수 카드를 펼쳐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이건 상대팀 투수도 마찬가지인데, 투수 쪽이 그나마 덜 외로운 건 타자 뒤쪽에

 

공을 받아주는 포수와 같이 고민을 한다는 점이다. 상대팀 투수가 타자를 향해 한껏 인상을 쓰며 노려보는 것은 타자의 눈

 

이 아니라 같은 팀 포수의 오른손 동작이다. 포수는 투수에게 어떤 쪽으로 어떤 공을 던질지 오른손의 사인으로 알려주며

 

(물론 우리 팀 타자가 볼 수 없게 다리 사이로 손을 가린다) 투수는 포수의 의견에 따라 투구를 한다. 물론 반드시 투수는

 

포수의 의견을 따라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이와 같은 의견 조율은 경기 시작전, 수많은 연습을 통해 미리 결정해 놓는다.

 

자, 그렇다면 우리 팀 타자는 지금 타석(타자가 공을 치는 곳. 타자가 타석에서 벗어나 공을 치면 무조건 아웃이다)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안타를 치자? 아니야. 안타는 어제도 쳤으니 홈런을 쳐볼까? 아냐. 요새 타율이 많이 떨어졌으니 안타를 노리자. 우중간을 깨끗이 가르는 안타를 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타자는 아무도 없다. 둥근 배트와 둥근(정확히는 구)공이 만나는 야구의 타격에서 어디를 향해 친다는 생

 

각을 가진 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타자는 그저 무조건 배트를 공에 정확히 가져다 강하게 맞히려는 생각만 할 뿐이

 

며, 공이 어디로 갈 찌는 정말 야구의 신만이 아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저 정확히 강하게 맞힌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타자가 타석에 섰을 때 생각하는 종류를 따져보면 크게 7가지 정도 된다.

 

첫째, 저 투수의 결정구가 무엇이며, '오늘 특별히' 잘 듣는 구종이 무엇인가.

 

둘째, 저 투수는 저번에 나와 만났을 때 어떠한 공배합을 가져갔나.

 

셋째, 내 약점을 알고 있는 저 투수는 어떤 기술로 내 약점을 파고들었나.

 

넷째, 최근 1-2이닝(회) 사이에 저 투수의 어떤 공이 좋고 어떤 공이 나쁜가.

 

다섯 번째, 지금 게임의 상황이 어떻고 내가 지금 타석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여섯 번째, 오늘 구장의 사정은 어떠한가. 일곱 번째, 내가 지금 '치고싶은' 공은 무엇인가.

 

이 고민을 야구를 지켜보는 팬도 같이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야구는 정적인 '지루한'운동이 아니라 물고 물리는 치열한 두

 

뇌와 운동신경의 복합적인 전쟁터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첫 번째, 상대방 투수가 오늘 처음 등판한 신인이 아닌 이상, 상대 투수의 주무기는 파악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상대 투수의 기본적인 장점과 단점은 파악하고 있게 마련이다. 직구(빠른공)의 구속은 얼마이며, 구속의 변화

 

폭(체인지업)은 어느 정도이며, 브레이킹볼의 변화 폭이나 싱커나 스프리터, 포크볼, 너클볼, 스크류볼 같은 트릭 볼은 얼

 

마나 잘 던지는지 정도는 기본으로 파악 되있다. 또한,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최근 특히 잘 던지는 구종이 무엇인가도 파악 되어있다.

 

두 번째, 타자는 지난번 상대투수가 자신을 어떻게 상대했는지도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각종 경기 기록이나 차트의 도움

 

이 없이도 타자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는 문제이다. 물론 투수 역시 전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전과 같은 방식으

 

로 던지느냐,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던지느냐의 수 싸움으로 갈리게 된다. 물론 이는 그 공을 쳐야하는 타자에게도 동등하

 

게 적용되며, 투수와 타자는 서로 머릿속으로 무언의 수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타자가 상대방 투수의 장, 단점을 알듯이, 상대투수도 타자의 장, 단점을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신의

 

단점을 얼마나 약화시키고 강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느냐이다. 다시 말하지만 야구는 사람이 하는 운동이며, 사람은 실수

 

투성이의 존재이다. 제아무리 홈런을 펑펑 쳐내는 선수라도 약점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선수가 홈런을 펑펑 쳐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겸허히 인정하고 최대한 상대 투수가 이용 할 수 없게 만들고,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데 능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선수는 안쪽 공에 약점이 있고, 어떤 선수는 바깥쪽 공에 약점이 있다. 빠른공을 잘 때리

 

는 타자가 있는 반면에 느린 변화구를 신나게 두들기는 타자도 있다. 보통 이 두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몸쪽 직구에는 방망이를 휘두를 엄두도 못내는 선수가 바깥쪽 변화구는 귀신같이 쳐내는 것이다. 언 듯 이해가 안 가는 일

 

이지만 프로 야구 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더 심하게는 직구-체인지업의 레퍼토리의 투수에게는 약하면서도 커브-체

 

인지업의 레퍼토리 투수에게는 강한 경우도 있다. 같은 체인지 업 인 데도 말이다. 이렇듯 각양각종의 선수취향을 세분화

 

하여 파악 할 수록 더욱 야구를 보는 재미가 배가된다.

 

네 번째,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구선수는 기계가 아니다. 직구를 잘 던지는 선수라고 해서 항상 힘있고 좋은 직구를 시즌

 

내내 던질 수는 없다. 따라서 상대 선수의 기본적인 장단점 외에도 오늘 당장의 컨디션 역시 체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

 

독 직구를 못 던지는 투수가 오늘은 갑자기 힘있는 직구를 코너코너에다가 찌르는 날도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번 더

 

힘주어 말한다. 야구선수는 기계가 아니라, 실수 투성이의 인간이다.

 

다섯 번째, 야구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하고, 감독은 타석에 나간 선수에게 바라는 무엇인가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물

 

론 안타나 홈런을 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선(평소엔 절대 그래서는 안되지만) 안타가 아닌 홈런을 노

 

리고 크게 스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일반적으로 감독이 타자에게 요구하는 사항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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