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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왜 타자보다 투수가 더 중요한가.
축구는 미드필더 놀음이고, 농구는 센터 놀음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축구에서는 미드필더가, 농구에서는 센터가 경기의 승패를 가리는 중요한 보직이라는 뜻이다. 야구에서는 투수가 바로 이런 역할이다. 축구나 농구에 비해 포지션의 역할이 확연하고, 세분화 되어있는 야구에서 한 포지션의 역할이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축구나 농구에 비해 훨씬 중요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투수가 야구의 75%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누구는 90%, 100% 라고 이야기 한다. 어쨌든 야구에서 투수의 피칭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데 는 이견이 없다. 대체로 강한 투수가 가장 많은 팀이 우승한다. 아무리 일발 장타력이 1번부터 9번까지 즐비하게 갖춰져 있더라도 투수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팀은 우승권 안에 들어가기 힘들다. 1~2게임의 단기전 승부라면 모르지만, 100게임이상 치르는 장기 레이스라면 그 차이는 더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2009년 프로야구를 예로 들어보자. 아직 페넌트레이스(정규시즌)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현재 1위를 달리는 기아 타이거즈를 보면, 물론 이종범, 이용규, 김원섭 등의 훌륭한 테이블 세터진(1,2,3번 타자들로 장타보다는 출루와 주루플레이에 능한 선수들)과 최희섭, 김상현, 나지완 등의 폭발적인 클린업트리오(루상의 주자들을 홈으로 쓸어와서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일발 장타의 능력을 갖춘 3,4,5번 타자를 말한다)를 갖추고 있지만 무엇보다 윤석민, 로페즈, 구톰슨, 양현종, 등의 화려한 선발 투수진의 힘이 크다.(09년 9월1일 팀 평균 자책점 3.80 1위) 반대로 꼴찌가 거의 확실시 되는 한화 이글스를 보면, 강동우, 이영우, 김태완, 김태균, 이범호, 이도형등 한방이 있는 강타자들이 즐비하게 있고, 경기 당 평균 홈런 개수가 1.0을 넘는 가공할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지만(09년 9월1일 팀 홈런152개 1위), 좌완 에이스 류현진 선수를 제외하면 선발, 중간 계투진 까지 완전히 무너져버려(09년9월1일 팀 방어율 5.80 8위, 팀 자책점 661 8위, 팀 볼넷 502개 6위, 팀 피안타 1172개 6위)팀 성적도 곤두박질 치고 있다. 압도적인 투수력 으로 페넌트레이스 2년 연속 1위, 한국시리즈 2년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해내었던 SK와이번스도 최근 에이스 채병용과 김광현, 마무리 정대현의 부상 등으로 제작 년과 작년 같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2위와 3위 사이에서 치열한 순위경쟁을 하고 있다. 배트를 잘 쳐서 많은 점수를 뽑아내야 이기기 쉬울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안정된 투수진을 갖추고 있다면 실점이 적기 때문에 아무리 뒤지고 있는 게임이라도 점수차가 많지 않아 언젠가는 뒤집을 기회가 온다. 다시 말해서, 지고 있더라도 완전히 패배할 점수가 아니라, 언제든지 역전 할 수 있는 팽팽한 1-2점차 승부를 이어 간다는 말이다. 또한 꼭 1점이 필요하다면 아웃카운트를 아낌없이 소비해 가며 수많은 작전을 걸 수도 있고, 이번 이닝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이닝에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된다. 반대로 투수진이 초반에 대량 실점을 하게되면 게임 초장부터 패색이 짙어지고 팀의 타자들은 대량득점을 위해 강타나 집중타를 때려야만 한다. 강타나 집중타는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러면 행운의 승리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기록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제 아무리 훌륭한 타자라도 훌륭한 투수의 공을 마구 두들기지는 못한다. 훌륭한 타자는 평범한 투수의 공을 마구 두들겨 타율을 끌어올리지만 훌륭한 투수는 훌륭한 타자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올린다. 타격이 공격자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경기의 주도권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진짜 ‘공격자’는 투수이다. 투수의 손에서 공이 나와야지 야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느냐에 따라 그 날의 경기 형태가 결정된다. 이렇듯 주도권을 쥐고 있는 투수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언제, 어떻게, 어디로 던질지 결정 할 수 있고, 그의 공을 쳐야 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그저 투수가 던지는 공에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산술적으로 봐도 야구에는 경기 시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한국의 프로야구에는 무승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9회가 끝나기 전에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무조건 27개의 아웃을 잡아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단 1실점만으로 팀이 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수비측 입장에선 조그마한 실수 하나라도 곧 실점으로 연결 될 수 있으며, 매 이닝 마다 세 타자를 아웃 시켜야 한다. 공격자 입장에서는 경기에 따라서는 가끔씩 득점을 올리더라도 만족 할 수 있다. 행운도 있고, 상대의 실책 등으로 득점 할 수 있으며, 그 1점이 결승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제아무리 야수가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하더라도 27개의 아웃 카운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투수는 ‘어떻게 하면 타자를 아웃 시킬 수 있을까’ 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아마야구가 아닌 이상, 프로의 세계에서 투수와 포수 두명 이서 27명의 타자를 전부 삼진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머지는 야수들의 수비에 맡겨야 하며 투수는 ‘치지 못 하는 마구’을 던지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정확히 맞히기 힘든 공’을 던져야 한다. 공이 배트에 정확히 맞지 않으면 타구에 힘이 없게 되고, 내 외야에 골고루 퍼져있는 수비수들이 자동적으로 아웃 카운트를 늘려준다. 그렇다면, 투수들은 어떻게 강타를 안 맞게 던지는 걸까? 피칭의 기술은 바로 이 대목에 초점을 맞추고 무궁한 발전을 해 왔다. 구체적인 사항은 뒤에 따로 언급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투수는 구속의 차, 공을 던지는 위치, 변화구의 움직임, 타자 속이기 등으로 나뉜다.
다음으로는 피칭이라는 움직임 자체에 있다. 인간의 몸은 물건을 최대의 힘으로 100회 이상 반복해서 던지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물건을 어깨 위에서부터 던지는 행위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다. 인간의 팔은 어깨 아래에서 진자운동을 하며, 팔꿈치는 안으로 휘지 밖으로는 휘지 않는다. 하지만 피칭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 힘이 가해지기 때문에 어깨근육, 팔꿈치 관절, 등 근육, 인대, 뼈까지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된다. 투수에게 팔은 군인에게 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구단에서는 투수를 별도로 관리한다. 선발투수는 나흘이나 닷새의 틈을 주고 등판시킨다.(선발 투수들은 한 게임에서 약100개의 공을 던진다) 그리고 경기 시작 전에는 마사지를 받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아이싱(얼음주머니 찜질)을 해서 근육의 열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최대한 낮춘다. 투구는 팔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리, 허리, 등, 팔꿈치 손목이 복합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힘을 모두 공에 쏟아 붓는 일이기 때문에 몸의 유연성이 좋아야 부상을 미연에 방지 할 수 있으며, 게임 후반부까지 던지려면 강철같은 체력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투수는 타자가 강하게 공을 때리지 못하게 하는 지략을 실전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전신의 건강과 팔을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인 제약 속에서 전략, 전술이 나오게 된다. 이론상으로 나오는 수많은 구질을 한 사람이 다 던질 수는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구질을 억지로 던지려 들었다가는 영영 팔을 못 쓰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건강한 투수라도 사소한 부상(손톱이 부러졌다던가, 발가락이 다치는 정도의)이나 피로 때문에 평소의 주무기인 구질을 잘 던지지 못하는 날도 있다.
다음으로는 컨트롤이다. 컨트롤이란, 투수가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느냐 인데, 이는 단순히 스트라이크존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안쪽, 바깥쪽, 높은 곳, 낮은 곳, 안쪽 높은 곳, 바깥쪽 낮은 곳 등 목표한 지점에 공의 구속이나 구위의 차이 없이 정확히 찔러 넣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투구란 동작 자체가 이미 부자연스런 동작이다. 이런 부자연스런 동작을 맘먹은 데로 한다는 것은 이미 고도의 기술이다. 정교한 컨트롤을 가진 선수는 굳이 빠른 구속이 없어도 될 정도인데, 혹자는 구속이나 구위 보다 정교한 컨트롤과 구속 차이가 타자들을 현혹시키는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대표적인 선수가 그레그 매덕스 (前LA 다저스)이다. 그의 직구 구속은 88마일(약141km/h)로 메이저리그 선수라고는 믿기 힘든 느린 공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는 전병호(前 삼성 라이온즈 투수, 現 삼성 라이온즈 코치), 정민철(現 한화 이글스 플레잉 코치), 서재응(現 기아 타이거즈 투수) 등이 대표적인 컨트롤 위주의 선수들이다. 이들 세 선수의 공통점은 사실은 아주 빠르고 묵직한 구위를 가진 강속구 투수들 이었다는 점이다. 팔과 어깨에 무리한 힘을 계속적으로 가한 결과, 결국 더 이상 강한 공을 던질 수 없게 되었고, 선수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책으로 정교한 컨트롤을 연마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위에서도 잠깐씩 언급한 ‘구위’ 이다. 구위란 공의 스피드와는 별개로, 공에 얼마나 많은 힘을 실어 던질 수 있는가 라는 능력을 말한다. 만일 직구라면, 구속은 느리더라도 공에 힘이 실려 있어야 한다. 타자들이 공을 쳐내려면, 공에 걸려있는 힘을 이겨내고 밀어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많이 실려 있을수록 타자들이 공의 힘을 이겨내고 공을 멀리 날려 보내는데 애를 먹는다. 커브 등의 변화구라면 밋밋하게 꺾이는게 아니라 날카롭게 꺾여 들어와야 한다.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연간 단1개의 홈런도 칠까말까한 타자들이 중요한 상황에서 덩치 큰 타자들 못지 않은 큰 홈런을 때려내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장타력이 떨어지는 타자를 만난 투수라면, 한방 맞을 걱정은 좀 덜게 되고, 정교한 컨트롤로써 손쉽게 타자를 잡으려는 약간의 안이한 생각이 뜬금 없는 장타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프로 선수라면 아무리 호리호리한 체격이라도 기본적인 장타력은 갖추고 있다.) 이는 투수들이 드러내는 가장 큰 폐단이다. 다시 말해, 컨트롤을 잡겠답시고 전력투구하지 않고 공의 구속과 구위를 늦춰버리는 것이다. 이는 ‘체인지 업’ 과는 다른 것이며, ‘체인지 업’ 에대한 자세한 설명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다음으로는 ‘투구동작’이다. 공을 던지는 모습은 대충 보면 모두가 비슷해 보이고 몇몇 언더핸드 투수나 사이드암 투수의 투수동작만 특별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와인드 업(와인드 업 자세가 아예 없는 투수도 많다. 대부분 중간계투요원들이 와인드업 자세를 아예 쓰지 않는다), 키킹(공을 던지기전 발을 들어올리는 동작), 팔의 움직임, 팔이 나오는 각도, 공이 나오는 위치, 이 보든 동작이 완료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도 매우 중요하다. 와인드 업 자세는 공을 던지기 전에 몸을 비틀고 팔을 머리 뒤로 끌어 올려서 공에 최대한 많은 힘을 주기 위한 사전 준비동작이다. 일종의 발사 준비 동작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루상에 주자가 나가 있다면 와인드 업 자세는 취하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 셋-업 자세이다. 이 자세는 루상에 있는 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와인드업 포지션을 생략하고 서있는 자세에서 바로 투구하는 동작이다. 주자 견제구를 던질 수 있기 때문에, 셋-업 자세에는 복잡한 보크(투수의 반칙투구행위의 보상으로 주자는 1베이스씩 자동 진루하는 것) 규정이 많다. (뒤의 ‘도루’ 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기본적으로, 투수는 직구를 던지든 변화구를 던지는 투구 폼은 항상 같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구종마다 던지는 투구 폼이 다르게 마련인데 이를 ‘쿠세’(球勢, 일본식 은어)라고도 한다. 이를 이용해서 타자는 투수의 공이 던져지기도 전에 구종을 파악하고 공을 때릴 준비를 한다. 물론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가령, 모 투수가 슬라이더를 던질 때 는 디딤발을 바깥쪽으로 디디고 팔꿈치가 약간 쳐져서 나온다고 한다면, 타자는 이를 보고 공이 던져지기 전에 구종을 파악해 버린다. 투수는 이러한 자신의 ‘쿠세’를 고치던지, 아니면 직구를 던질 때 도 간간히 슬라이더 자세로 던져서 타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도 가능하다. 손민한(現 롯데 자이언츠 투수) 선수가 자신의 ‘쿠세’가 들통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다음 등판 때부터 자신의 ‘쿠세’를 마구 섞어 던져 타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투수에게 불리하기만 했던 ‘쿠세’를 오히려 역으로 자신의 무기로 삼은 전형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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