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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역행유희 (逆行遊戱)

 

 

 

소녀는 타로 카드를 뒤집었다. 3분전 배심원들은 소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소녀는 사람을 죽였다. 술에 취한 남자가 소녀를 강간하려 했다. 남자는 돈이 많았다. 남자는 아는 사람도 많았다. 소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의 애첩을 닮은 복제품이었다. 소녀는 점술가의 뇌를 물려받았다. 뒤집혀진 카드는 탑(The Tower)이었다. 역방향이었다. 남자는 코웃음 쳤다. 마지막 발악인가?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판사는 배심원들의 말을 따랐다. 그것은 남자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준 뒤부터 이미 정해진 순서였다. 즉결집행이 판결에 따라왔다. 집행관은 피고석 의자에 묶인 소녀의 뒷목에 있는 시스템 디스크를 빼냈다. 소녀의 눈빛이 사라졌다. 전원을 끄지 않고 디스크를 빼내면 복제품은 내부가 타 버린다. 소녀의 몸을 감싼 가죽이 열로 인해 녹아내렸다. 고약한 냄새가 났다. 집행관은 소화기로 가죽을 뚫고 나오려던 불길을 잠재웠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돈을 뿌렸다. 배심원들과 판사와 집행관은 한 푼 이라도 더 가지려고 서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주고받았다. 법정의 문을 열고 남자는 나왔다. 취재기자들이 달려들어 플래시를 터뜨렸다. 눈이 부셨다. 밖은 이미 밤이었다. 윗배, 아랫배, 길쭉하게 나온 밑배가 모두 고픈 남자는 길가에 멈춰있는 택시에 몸을 싣고 운전기사에게 집창촌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 위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 작자들에게 싱긋 웃어주던 남자는 하늘 위에 달이 없다는 걸 알았다.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모두들 차에서 멀어졌다. 남자는 운전기사가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걸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소녀에겐 역(逆)위치였다. 남자에겐 정(正)위치였다. 소녀에게 타로 카드를 건넨 건 남자였다. 소녀는 자신이 달에서 왔다고 했다. 달에는 어두움만 있어서 혼자 지내기 어렵다고 했다. 남자는 소녀를 애첩으로서만 사랑했다. 점술가는 남자가 소녀와 같은 날 죽는다고 말했었다. 소녀는 피고석에서 일어났다. 돈에 정신 팔린 사람들을 뒤로 하고 법정을 빠져 나왔다. 길가에 세워진, 이마가 꿰뚫린 남자가 앉아있는 택시의 운전석에 앉았다. 소녀는 남자에게 입맞춤했다. 남자는 달로 날아가고 있었다. 점술가는 온 세계가 다 들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달은 그렇게, 지구에 찾아왔다.

 

 

 

소녀는 타로 카드를 뒤집었다. 8분전 배심원들은 소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소녀는 사람을 죽였다. 다 죽어가는 남자를 보고도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남자는 돈이 없었다. 남자는 아는 사람은 많았다. 소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의 애첩을 닮은 여신이었다. 소녀는 점술가의 뇌를 뜯어먹고 있었다. 뒤집혀진 카드는 달(The Moon)이었다. 소녀는 코웃음을 쳤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나? 남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판사는 배심원들의 말을 따랐다. 그것은 남자가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들이 인지한 뒤부터 이미 정해진 순서였다. 즉결집행만 기각되었다. 집행관은 피고석에 발생한 불을 끄느라고 정신없었다. 남자의 숨소리가 끊어졌다. 전원을 끄지 않고 갑작스레 숨을 끊으면 인간의 영혼은 타 버린다. 남자의 몸을 감싼 가죽이 물먹은 듯 푸르스름해졌다. 고약한 냄새가 났다. 집행관은 다 끄지 못한 불길에 남자를 집어넣었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銀)을 뿌렸다. 배심원들과 판사와 집행관은 한 푼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다시 한번 서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주고받았다. 법정의 문을 통과해 소녀는 나왔다. 바깥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취재기자들은 소녀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플래시는 터지지 않았다. 옅은 빛만 감도는 새벽이었다. 윗배, 아랫배, 길쭉하게 나온 샅배가 모두 꽉 찬 소녀는 길가에 멈춰있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텅 빈 택시에는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있는 가짜 운전기사가 곧 발생한 수입에 잔뜩 기대를 품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남자가 나왔다. 플래시 세례가 남자에게 쏟아졌다. 남자는 그들에게 욕을 퍼부으며 길가에 세워진 택시에 몸을 넣었다. 남자가「집창촌」이라는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강도는 방아쇠를 당겼다. 소녀에겐 역(逆)위치였다. 남자에겐 정(正)위치였다. 남자에게 타로 카드를 준 건 점술가였다. 소녀는 자신이 달에서 왔다고 했다. 지구엔 어두움만 있어서 자신이 살던 달과 같아 놀러왔다고 했다. 소녀는 택시에서 빠져나왔다. 남자에 정신 팔린 기자들을 뒤로 하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진, 혹이 살짝 돋아난 재판장의 자리에 앉았다. 소녀는 기절한 재판장에게 입맞춤했다. 점술가는 달로 날아가고 있었다. 남자는 온 세계가 다 들을 정도로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달은 그렇게, 지구에서 떠나갔다.

 

 

 

소녀는 타로 카드를 뒤집었다. 13분전 배심원들은 소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역(逆)위지의 별(The Star)이었다.

 

 

 

Fin.

  • ?
    솔잎 2010.02.01 12:29(*.182.83.119)

    이런거 좋아합니다.

  • ?
    비류 2010.02.04 12:08(*.71.175.51)

    멋져요. 이렇게 독특한 글을 사랑합니다.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군요. 제가 타로 카드를 잘 알지 못해서요. 잘 안다면 글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석을 달아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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