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6 00:02

벚꽃 위에 내린 눈

(*.216.106.213) 댓글 4조회 수 3869추천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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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 지는 모습을 두고 흔히 눈이 내리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 말이 현실이 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4월이었다. 이제 막 꽃을 피워낸 벚나무 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꽃잎처럼 하늘거리며, 그러나 갓 핀 꽃잎을 가혹하게 떨어뜨리는 따스한 차가움으로. 그리하여 누구나 한 번쯤은 입에 담았을 환상이 현실이 되었다. 분분히 날리는 것이 눈송이인지 꽃잎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것은 분명 진경(珍景)이었다.

 

  진한 인디고 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그 미는 더욱 배가되었다. 눈은 희었다. 그리고 이 계절에 눈처럼 떨어지는 꽃잎 또한 희었다. 그 백색 편린들이 하늘에서 지상까지 눈 닿는 모든 세계를 점령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별빛 자신이 내려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달빛을 받아 은은하면서도 화려하게 빛나는 죽음의 무도.

 

  그녀는 그 모순된 아름다움 속을 걷고 있었다. 엷게 쌓인 눈과 흩뿌려진 꽃잎이 그녀의 발밑에서 한 몸으로 이겨졌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늦추지도 빨리 하지도 않는, 시계처럼 일정한 걸음걸이로 그녀는 계속해서 여린 봄과 지치지 않는 겨울의 사이를 걸었다.

 

  긴, 긴 겨울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겨울이었다. 그가 그 소식을 전해들은 것도, 편지를 직접 받아든 것도 전부 창백한 태양이 굽어보는 가운데. 그녀가 곁으로 다가가자 그는 흐릿하게 웃으며 편지를 세 번 겹쳐 접었다.


  '떠난대.'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만으로,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몇 번을 밀어냈다고 생각해도 겨울은 그때마다 되돌아왔다. 그들이 기다리는 여름이 너무나 먼 꿈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눈처럼 부슬거리는 햇살과 함께 문을 나선 그는 해가 질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홀로 남겨진 채,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에 길게 드리워진 빛이 시린 백색에서 주홍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노을이 다시 보라빛으로 물들어갈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나선 문을 나섰다.

 

  이윽고 그녀가 도달한 곳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밤하늘을 받치고 서 있었다. 그들이 만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늙은 나무였지만 세월이 무색하게, 잠시 따스했던 햇살에 속아 그 역시도 하얀 꽃잎을 가득 인 채였다. 벚꽃이라 하면 흔히 연분홍빛을 떠올리지만 그 나무에 핀 꽃은 유독 희었다. 내려 쌓이는 얇디 얇은 눈꽃송이가 진실로 꽃잎의 하나로 보일 만큼, 그 고목의 한 가지 가지마다 매달린 것이 전부 눈의 꽃으로 보일 만큼. 

 

  그러나 그 하얀 화편(華片) 역시 차가운 자매의 손에 이끌려 속절없이 때이른 낙(落)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눈송이와 함께, 하이얀 꽃잎이 내린다.

 

  내려서, 그의 어깨 위에 가만히 올라앉았다.

 

  그녀는 그 꽃잎처럼 그를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오래 거기 앉아있었는지 머리, 어깨, 무릎 할 것 없이 눈과 꽃이 점점이 내려앉아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해서 쌓여가는 그 자디 잔 무게들을 그는 굳이 뿌리치지 않았다. 그녀가 앞에 섰을 때조차 고개를 떨군 채 움직이지 아니했다. 등을 기대어 앉은 고목의 한 뿌리처럼, 어린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그저 조금씩 묻혀갈 뿐으로.

 

  어쩌면 그 여린 손길들이 떠나갈까 두려워하는 듯도 보였다. 그래서 그녀도 굳이 그에게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말하지 않았다. 바람 없는 눈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시선은 어긋난 채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윽고 먼저 움직인 것은 또 다시 그녀 쪽이었다.

 

  왔을 때처럼 가만히, 꽃잎 하나 눈송이 하나 밀어내지 않을 듯한 걸음을 내딛어 그녀는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그는 마치 꽃잎과 함께 얼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녀는 그런 그의 앞에 한 무릎을 꿇어 자신을 낮추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다만 그가 고개를 들기만 하면 그녀의 눈을 바로 볼 수 있을 만큼.

 

  조용히 뻗은 손이 그의 얼굴로 다가갔다. 마치 또 하나의 꽃잎이 얹히듯이, 손끝이 그의 얼굴에 닿고, 그리고 멈춰섰다. 그녀는 그대로 기다림을 시작했다. 자신 또한 그와 함께 그 자리에서 눈에 덮여갈 것처럼.

 

  몇 닢인지 모를 꽃과 눈이 두 사람에 내린 뒤, 처음으로 그가 움직였다.

 

  "괜찮아."

 

  보이지 않는 입술이 먼저 말하고,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었다. 말없이 그를 향해있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해 조용히 웃어보이고, 그는 한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 뺨에 닿아있는, 그와 체온이 닮아진 그 손을 그는 가만히 끌어와 손목 안쪽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괜찮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러했듯이. 단지 자신의 손에 덮인 그의 입술을, 따스하게 퍼져나와 그녀의 언 손을 녹이고 식어져 맺히는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식을 듯 식지 않고, 내리는 겨울은 사르르 녹이고 봄만을 그 위에 남기는 그 서늘한 따스함을 어루만지며,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희푸른 눈 위에 떨어진 꽃잎이 눈물처럼 점점이 분홍빛 자욱을 물들이고 있었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나버린 글입니다. 떠오르는 대로 러프하게 써놓고 언젠가 고쳐쓰려고 했는데, 막상 보고 있으면 어딘가가 부자연스럽고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만 들지 그게 어디고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 감이 안 오네요.

  남에게 평가 받는 것은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두려움. 용기 내서 올려봤습니다.




  • profile
    Nemo 2010.07.16 02:03(*.142.174.11)

    와우- 살아있었네 ㅋ


    벚꽃은 예쁘지, 개인적으론 벚꽃보다 벚나무 단풍을 더 좋아하지만 ㅋ

  • ?
    darkkid 2010.07.16 13:48(*.216.106.213)

    와우- 살아있었네 ㅋ << 누가 할 소리를 'ㅅ'/

  • profile
    Bomberic Angel 2010.07.17 21:32(*.200.3.13)

    전 아마추어니 뭐라고 하긴 그렇습니만, 일단 거칠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뭐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좋은 소설은 뛰어난 기교, 명문장이 기억에 남지 아니하고

    읽고난 뒤에 몇 줄의 짧은 내용과 감상만이 남을 뿐이란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다키드 님의 글을 읽고난 뒤 남은 것은

    눈과 벛꽂, 울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틀린 맞춤법이나 어색한 문장을 잡아내는 수준이라 죄송합니다.]

  • ?
    darkkid 2010.07.20 23:51(*.216.106.213)

      '울고 있는 여자' - 까지 보아주셨군요. 진지하게 읽고 느낀 점을 말씀해주신다면 그 어떤 평이라도 저에게는 최고의 평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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