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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1 헤어짐이 만든 인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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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마물과 맞닥뜨릴 위험을 넘긴 게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은 이제 막 마물이 되어가는 자의 공격을 받았다. 이틀 연속으로 마물과 엮이는 게 가능한 일인가? 어쨌거나 엡실론이 시간을 끌어준 덕에 킷은 도망칠 수 있었다. 마물은 오직 하나. 엡실론이 당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 뿐이다. 마물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자는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 엡실론은 그 정도로 잘 싸우진 못한다.

건물에 몸을 숨긴 채 엡실론의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킷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첫 공격은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폴액스에 찍힌 마물의 어깨에서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물은 더욱 날뛰었다. 엡실론은 등에 맨 라운드 실드를 끌러 마물의 공격을 흘려냈다.

“너무 가까이 붙었어요!”

엡실론은 방패로 수비하다가 기회를 보아 공격을 하는 타입이었다. 그 같은 전투방식은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지키는 데 한 몫 해왔다. 허나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지키기보다는 단순히 시간을 끌기위해 선택한 방법. 동료들이 올 때까지 버티기 위한 방법으로 방패를 꺼내들었으나, 방패에 와 닿는 충격이 너무 컸다.

“빌어먹을!”

급기야 엡실론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욕을 할 시간에 칼질을 한 번 더 하겠다는 엡실론이었다. 얼굴을 찌푸린 엡실론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본 킷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궁지에 몰린 거야.”

방패를 내팽개치며 주춤주춤 물러서는 엡실론은 금방이라도 마물에게 공격당해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마물의 엄청난 힘을 방패로 막기보다는 피해야만 하는데, 엡실론은 평소 때처럼 방패로 막았다. 그래서 그의 몸은 마물의 공격으로 인한 충격이 누적되어 저릿저릿한 상태였다. 다급한 마음에 킷은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들었다. 어린애가 그냥 던져봐야 도움이 될 리 없다. 그녀는 허리를 감싼 천을 풀었다. 잘 접혀서 안쪽으로 말아진 긴 튜닉 자락이 킷의 발등을 덮고도 남아 바닥에 드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킷은 천을 삼각형으로 접어 그 끝을 모아 쥔 뒤, 오목하게 푹 꺼진 부분에 돌을 넣었다.

“이야아아압!!!”

킷이 고함을 지르며 돌을 잰 천을 빙글빙글 돌렸다. 원심력을 품은 돌은 금방이라도 천을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난폭하게 울었다. 부웅, 부웅, 부웅. 킷의 손가락이 들리며 모아 쥔 천의 끝자락이 풀렸다. 속박이 풀린 난폭한 악동이 마물의 머리통으로 날았다. 누가 봐도 명중이었다. 그러나 마물은 가볍게 손을 들어 돌을 잡아냈다.

“슬링?”

엡실론이 건물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킷을 발견했다. 슬링 공격은 먹혀들지 않았지만 엡실론이 잠깐 동안 숨 돌릴 여유를 주었다. 방패를 주워 다시 등에 맨 엡실론은 재빨리 폴엑스를 분해해 허리춤에 매달았다.

“킷! 계속하자!”

엡실론의 손에서 돌이 날았다. 슬링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깨진 돌조각 중에서 날카로운 것만 골라 날렸기에 제법 속도가 빨랐다. 그것은 여지없이 마물에게 박혀들었다.

“으윽.”

마물이 얼굴을 감싸던 손을 치웠다. 마물의 눈구멍 하나에 돌이 박혀 있었다.

“죽인다! 죽인다! 너 죽인다!”

“고통은 느끼는 모양이구나!”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앱실론이 바닥을 굴렀다. 플레일에 매인 무거운 추가 바닥을 찍었다. 공격이 빗나간 것을 본 마물이 다시 플레일을 거둬들였다.

“이거나 먹엇!”

앙칼진 킷의 고함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물의 머리에 큼직한 돌이 강타했다. 마물의 몸이 휘청거렸다. 얼핏 봐도 머리가 찌그러진 게 보인다.

“나이스 샷!”

절대 슬링으로 날리기 힘든 돌이었지만 킷은 해냈다. 낑낑대며 2층까지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최대한 피해를 입히기 위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돌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집어왔고, 슬링천이 찢어질까봐 2층에서 찾아낸 가죽 배낭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킷의 공격에 마물이 정신 못 차리는 동안 앱실론이 건물을 빙 돌아 킷이 있는 건물로 왔다. 마물은 엡실론이 몸을 피한 것을 보고는, 주섬주섬 플레일을 챙기며 으르렁거렸다.

“꼬마도 죽인다. 이제 안 봐준다.”

멀리서도 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눈에 띄게 굼떠진 모습이었지만 적개심만은 그대로였다. 마물을 무시하며 킷은 느긋하게 슬링 천에 돌을 재두었다.

“그만! 킷 이제 됐어.”

앱실론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깃들어 있었다. 제일 먼저 드미트리의 모습이 보였다. 드미트리가 반쯤 무너진 서점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며 숏소드를 찔렀다.

“너!”

마물이 플레일의 사슬을 모아 쥐고 드미트리를 후려쳤다. 이제까지의 공격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빠른 공격이었다. 긴 채찍처럼 쇠사슬이 바닥을 훑으며 흙먼지를 피웠다. 허나 그것에 맞을 드미트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마물의 발치에 머물러 있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마물이 고개를 숙이자, 어느새 마물의 뒤에 나타난 벡스터가 프란체스카를 던졌다. 그것은 정확히 마물의 등에 명중했다.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마물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자, 드미트리가 몸을 솟구치며 마물의 턱에 숏소드를 찔러 넣었다. 마물은 드미트리를 부둥켜안을 것처럼 양팔을 오므렸으나, 그는 재빨리 마물의 몸을 박차고 바닥을 뒹굴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다 죽여버리겠다!”

핏발선 눈을 굴리며 마물이 소리 질렀으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물이 무서운 이유는 떼로 몰려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홀로 서 있는 마물쯤이야 어렵지 않겠느냐는 자도 있지만, 그런 어리석은 자들은 촉수공격을 받고 일찌감치 사라졌을 것이다. 촉수 표면은 미세한 털실보푸라기처럼 생겼는데, 어찌나 약한지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부스러졌다. 그리고 부스러진 부분은 피부 속에 파고들어 침식이 이루어진다. 만약 그 부분을 잘라버리지 않으면 마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마물과 인간 여럿이 싸우면 물리칠 수는 있지만, 마물이 되어버리는 자들이 새로 생겨나게 된다. 결국 전투가 끝나면 마물의 숫자가 무지막지하게 불어나버리는 것이다.

반면 잠식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도 할 수 있고, 인간의 형상까지 유지하고 있는 자는 마물이되 마물처럼 위험하지 않았다. 아직 촉수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만 끝내자!”

존슨이 브로드소드를 치켜들고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마물이 서둘러 공격을 시작했으나 힘없이 딸려오는 건 빈 쇠사슬이었다.

“이걸 찾나?”

벡스터와 드미트리가 강철 추를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끝에 달린 추마저 떨어지고 없으니 마물이 든 무기는 평범한 쇠사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물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쇠사슬을 던져 기어코 존슨의 브로드소드에 감기게 만들었다. 힘겨루기가 시작되자마자 존슨은 마물의 힘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마물이 크게 입을 벌렸다. 귀까지 쭉 찢어진 입에서 피와 진물이 섞여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놈의 이빨, 참 뾰족하기도 하다.”

손만 뻗으면 마물의 아가리가 코앞인데도 아무도 존슨을 돕지 않았다.

“이러다 나까지 마물이 되면 어쩌려고 다들 그러고 있어?”

“걱정마라. 신속히 머리를 따주겠다.”

“오면서 묏자리도 봐 놨지.”

“쳇.”

벡스터와 엡실론이 싱글거리며 하는 말을 듣고, 존슨은 끙 하고 힘을 주었다. 정말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었다. 존슨이 저항하자 마물에게로 끌려가던 몸이 멈추고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헤에? 어디선가 봤다 했더니 정보 상인의 가드 녀석이잖아? 그래서 드미트리가 열 받은 건가?”

존슨의 말에 킷은 마물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정말 그때 그 가드 맞는데?”

어느새 옆에 선 페일이 중얼거렸다. 마물이 되어서까지 찾아올 정도로 우리가 원한을 샀었나? 그건 킷도 묻고 싶은 말이었다.

“어째서 우리 뒤를 쫒은 거냐?”

얼음가루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드미트리가 물었다. 그 손에는 벡스터에게 빌린 숏소드가 들려 있었다. 아이들을 공격한 자를 앞에 두고 제정신일 부모는 어디에도 없었다. 존슨과 힘겨루기를 하는 중임에도 마물은 이를 갈며 대답해주었다.

“네놈들이…네놈들이! 단서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뭐? 단서? 무슨 단서?”

존슨이 의아해 하며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게 있었어?”

“처음 듣는 얘기다. 그런 게 있었다면 곧장 찾아서 여길 떴겠지. 왜 무작정 헤집고 다녔겠나?”

“거짓말이라고 보기엔 이상한데? 마물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 이지를 상실한 것도 아닌데,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우릴 뒤 쫓아와?”

“뭔가 오해가 있었나보군.”

어른들의 분위기가 미묘해지는 가운데, 아이들은 서로 귓속말을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거 같은데?”

“으음. 이건 버려진 책에서 나온 쪽지라고. 말이 안 되잖아? 자기 거라면 자기 품속에 챙겨 넣어야지, 왜 책속에 끼워 두냐고.”

“하지만 그걸 찾아 왔다잖아?”

그러고 보니 어제 킷과 페일이 숨어 있는 서점으로 몰래 들어온 것도 나름이 목적이 있어서일지 모른다. 해코지를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고작 어린애를 노리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쪽지를 찾으려 움직인 것이라면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마물이 되어서까지 쪽지를 찾아온 집요함을 생각하면 딱 잡아떼기는 힘들어보였다. 알고서 찾아온 게 분명했으니.

끙끙거리던 킷은 결국 앞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저에요.”

마물과 어른들의 눈이 모였다. 킷은 품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백지잖아? 그보다 어디서 찾은 거냐? 너희들은 우리가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보 상인을 만나는 동안 우린 서점에 있었죠? 그때 장난치면서 근처의 책을 던졌는데 거기에 끼워져 있던 게 떨어진 거예요. 그리고 이거 마법시약에 반응하더군요. 그래서 글을 해석했더니 위치는 서점이었어요.”

갑자기 마물이 힘을 풀며 쇠사슬을 놓아버렸다. 한창 힘주어 당기던 존슨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물이 근처의 건물로 뛰어올랐다.

“내놔!”

높은 지붕에서 멀리 뛰는 것은 쉬웠다. 마물이 킷의 뒤로 내려섰다. 드미트리가 살기를 퍼뜨리며 달려왔고, 존슨도 황급히 뛰어왔다. 얼마나 급히 움직였는지 브로드소드에 감긴 쇠사슬을 그대로 달고 있을 정도였다. 남은 무기가 대거뿐인 벡스터는 인상을 구기며 근처의 돌을 집어 들었고, 아이들과 가까이 있던 엡실론은 방패를 들어 앞을 가렸다. 다행이도 마물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만 주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 공격하지 않는다. 그것만 주면 물러가겠다.”

“시, 싫어요.”

킷은 종이를 꼭 쥐었다. 서점이라는 확신을 얻고 뒤지다가 서점의 구석이라는 구체적인 장소까지 알아낸 마당이니, 종이는 단서 이상의 가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마물이 끈덕지게 요구하자, 킷은 이것에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아 내어주기 싫었다.

“이건 내거예요. 내가 찾아낸 거라고요!”

“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제발 다오. 마물이 된지 하루가 지나면 난 완전히 잠식되고 만다. 그 전에……검을 찾아야 한다.”

킷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물의 말은 검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킷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마법으로 탐지된 물건이 검이었다. 마법이 걸려 있는 검. 그게 마법검이지 뭐란 말인가. 그런 귀한 물건이 엉뚱한 자에게 넘어가게 생겼다.

종이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게다가 얼렁뚱땅 사실을 숨기고 몰래 검을 차지할 생각이었는데, 이젠 모두가 알 게 되어버렸다. 아버지인 드미트리에게는 말할 생각이었지만 다른 어른들에게는 아니었기에 킷은 입맛이 썼다. 어쩌면 이 일은 내분을 조장할 지도 모른다.

마물은 계속해서 요구했다.

“소용 닿지 않는 자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다. 이리 다오.”

아이들과 엡실론은 건물과 마물의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서로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섣불리 공격하기 힘든 상태였다. 결국 존슨은 아직 인간으로서 이지가 남아 있을 때 해결하지 않으면 모두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킷. 그냥 줘 버려라.”

드미트리도 거들었다.

“그냥 줘버려. 어차피 상대는 마물이다.”

상대는 마물. 결국 마물이 되면 무기를 다루기 힘든 몸이 되므로, 당장은 검이 넘어가더라도 나중에 차지하면 그만이다. 킷은 숨겨진 뜻을 알고 종이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마물이 되고나면 당해낼 수 있을까?’

마물이 원하는 게, 검이든 뭐건 간에 결국 포기해야 된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킷은 미련을 털어버렸다. 마물은 약속대로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마물은 종이를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일행은 아이들을 에워싼 채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마물이 나타난 게, 어제 이맘때였지 아마?”

“맞아. 저 녀석의 말마따나 하루가 되어 가니 곧 있으면 완전한 마물이 될 거야.”

“빌어먹을. 결국 허탕인가.”

“어쩔 수 없지. 저 녀석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지만, 다른 일에 정신 팔려 있을 때 빠져나가는 게 좋겠어.”

다들 이에 동의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자, 가드의 모습은 작은 점이 되어 멀어졌고, 아이들을 등에 업은 어른들은 본격적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신이여! 우릴 굽어 살피소서!”

다크랜드에서 저렇게 신을 부르짖는 사람을 킷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드미트리에게 업혀 가던 킷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뒤를 보았다. 반쯤 마물이 된 가드가 어디선가 한 자루 검을 찾아내어 뽑아들고 있었다. 그 검에서 선명한 붉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정말 마법검이었네.”

킷의 탄성을 들은 드미트리도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했다.

“성기사?”

다른 사람들도 뒤를 돌아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저 검은?”

“마법검인가?”

“붉은 빛을 내는 마법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건 헤크로스가 용납하지 않으니까. 저건 오러 블레이드다. 저 가드는 성기사였던 모양이다.”

“말도 안 돼. 이미 침식이 시작되어 마물이 되어가는 성기사라니 그게 말이 돼?”

“그렇다면 검에 어린 붉은 기운을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으음. 그렇다고 치자고.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하는 것만은 변함이 없으니.”

“잠깐.”

드미트리가 근처의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그의 돌발행동에 다들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자, 드미트리가 급히 손짓하며 소리 질렀다.

“비린내가 다가오고 있어!”

“헉!”

그 말은 마물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일행들은 서둘러 건물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엡실론이 내부를 쓱 훑어보고는 장식장을 밀어 입구를 막아버렸다. 이미 창문에는 못질이 되어 있었기에 걱정하진 않았지만, 1층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건물 앞으로 지나간다면 우리냄새를 못 맡을 리 없어. 여긴 몇 층 건물이지?”

“3층.”

“애매하군. 그나마 2층보다는 낫겠지.”

우르르 3층에 올라간 일행들은 자세를 낮춰 벽에 기대앉았고, 벡스터와 엡실론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3층까지 올라오면서 통로마다 장애물을 배치해 두었다는 뜻이었다.

“여기도 창문이 잠겨 있으니 우리들의 냄새가 새어나가진 않을 거야. 다만 인기척이 문제다. 다들 주의해.”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물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드미트리의 주의를 들은 존슨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에는 전직 성기사가 오러 블레이드를 들고 있었고,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마물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다. 하루에 한번 꼴로 마물과 조우하기는 힘든 법이라, 존슨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존슨이 그랬을 정도니 나머지 사람들이라고 평온하진 못했다. 드미트리가 눈을 꾹 감으며 중얼거렸다.

“온다.”

과연 두두두 땅을 울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냐! 날 먹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와라! 이 악마들!”

바깥에서는 전직 성기사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 성기사가 침식되어 마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만 빼면, 그야말로 이야기 속에나 나올법한 상황이었다. 창문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킷은, 창문을 막은 판자의 틈에 눈을 갖다 대었다. 들키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창문을 막은 판자 때문에 이곳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어둠. 작은 틈으로 엿본다고 하여 쉽게 발견될 리 없었다. 게다가 마물은 성기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흐아압!”

높이 뛰어오른 성기사의 붉은 검이 마물을 내리쳤다. 마물은 머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두 쪽이 되어 쓰러졌다. 절단면에서부터 불꽃이 확 피어오르더니, 마물의 시체는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뒤이어 덤벼드는 마물은 어깨에서부터 시작된 대각선의 절단면으로부터 시작된 화염 속에서 오그라들었다. 성기사의 붉은 검에 베인 마물들은 하나같이 활활 타오르며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이제 저 검에 맺힌 붉은 기운이 신성력의 응집체, 오러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힘은 좋군.”

“일격에 무조건 두 동강이야. 확실히 플레일을 다루던 자다워.”

성기사와 마물의 싸움을 구경하는 건 킷뿐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다들 창문을 막은 판자의 틈새 앞에 바짝 붙어 있었다. 킷은 다시 바깥의 싸움에 집중했다.

“흐아아압!”

무슨 짓을 한 건지 한 번의 칼질에 마물들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 이어진 공격에는 다리가 분리되고, 재차 휘두르는 오러 블레이드에 마물들의 몸이 세로로 갈라졌다. 조각난 시체들에서 서서히 불길이 피어올랐다. 제일 먼저 처치한 마물은 이미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땅 위에 두 다리를 굳건히 디디고 선 존재는, 오직 성기사.

검을 짚고 선 성기사가 허리를 구부리며 기침을 해댔다. 그의 앞에 검붉은 액체가 흩뿌려졌다. 굳게 다물린 드미트리의 입이 열렸다.

“끝난 것 같군.”

싸움이 끝난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성기사의 생명이 끝났음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건조했다. 그 메마른 목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조용히 창문에서 떨어졌다. 마물들은 쓰러졌지만, 이제 곧 마물이 된 성기사가 날뛸 것이다. 마물이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분명 성기사는 일행들이 황급히 근처의 건물로 피신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물이 본능을 쫒아 행동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 순간 그렇다고 굳게 믿는 사람은 없었다. 곧 냉혹한 현실이 닥쳐올 것을 예감한 사람들은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바깥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시오!”

그것은 일행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 ?
    푸른나래★ 2012.02.13 17:48(*.40.58.35)

    재미있네요. 전개 속도를 봐서는 어마어마하게 길어질 것 같은데...... 파이팅!

  • profile
    BombericAngel 2012.02.17 18:54(*.131.198.83)

    아...간만에 들른 창습란에 댓글이 달렸네...[눈물 좀 닦고]

    갑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오는 슬럼프때문에 진도가 안나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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