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온-어디를 보느냐-
알수없는 소리는 타온의 귓가에서 흘러나오는듯 했다.소리는 들리지만 그것을 '듣고있다'라고 말할수는 없었다.
차라리 소리가 머리속에서 '흘러나온다'라고 말하는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듯 했다.타온은 식은땀을 흘리며 이 알수없는
상황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했다.그러나 뜻대로 될수는 없었다.왜냐하면 머리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려해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리속을 멤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가 만날것이다.-나를 찾으라-나를 반드시 찾으라-네 길의 끝자락에 나를 만날것이다.-
그 목소리는 여인의 목소리였다.그러나 가늘지 않은,오히려 묵직하고 지당한 명령을 내리는듯한 권위가 서려있는 목소리였다.
여인네의 목소리에서는 느낄수 없었던 위압감과 엄중함이 서려있는듯한 목소리. 타온은 꼼짝없이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들을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응,잠시만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타온의 부대는 어느 한적한곳에서 숙영지를 구축하였다.아직 쌀쌀한 날씨에 병사들은 투덜댔지만 그래도 그들의 임무를
다하였다.임시막사 밖으로는 망치질소리,나무기둥세우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타온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느 여인의 목소리였는데,정말 꼼짝할수가 없더군."
아르센은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모두 소인의 불충이옵니다.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니아니,그것은 너의 불충도 뭐도 아니지.어떻게 네가 들을수 없는 소리가 있을까?음..이것은 필시 어느 도술사의 수작이
분명한듯하다.떠돌이 흉족의 무당짓일수도 있을것이고."
"즉시 도법병을 풀어 주위를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르센은 신속히 밖으로 나아갔다.막사밖에서는 아르센의 도법병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타온은 계속 생각하였다.
'어떻게 관아 안까지 그러한 도술로 이야기를 건낼수 있는것이지?제 아무리 뛰어난 도인이나 술법사라 할지라도
부적으로 차단해놓은 관아에 까지 술법을 쓸수 있다는것은...'
이것을 장군들과 함께 이야기 해보려 생각했으나,가뜩이나 왕자를 보좌하여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고충을 가지고있는
장군들에게 더 큰짐을 주는것은 싫었다.타온은 이러한 고민이 쓸데없는것이란것을 깨닫고 다음 숙영지 혹은 목적지까지
가는데 필요한 보급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싸늘한 가을의 한기가 코끝에 닿자마자 가을 특유의 냄새로 바뀌었다.서늘하면서도 시원한 냄새.
마치 바닷가의 비린내와 흡사한 냄새는 불침번을 선체 동트는것을 맞는 초병들의 코에도,천막에서 서로 껴안은체 추위를
이기고 있는 병사들에게도,밤새 타온이 말한 이상한 목소리를 같이 듣기위해 밤을 지세운 아르센에게도 찾아왔다.
타온은 일어나자 마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아른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하,이 미련한 친구.그렇다고 밤을 지세우면 어찌하는가?"
말에 탄채로 잠을 자면 된다는 아르센의 대답에 타온은 그저 빙긋 웃으며 잠자리를 게었다.언제나 궁녀들이 이불을 게어주던
터라,타온은 아직도 자신의 군장을 꾸리는 일이 어설펐다.
"출발한다."
아침을 먹고 시작한 출정길,날씨는 춥고 햇살은 따가운 전형적인 가을날이였다.병사들은 게으른 눈으로 부지런한 걸음을
걸었다.아르센은 새벽녘 대답과 마찬가지로 말안장에 늘어져 잠을 청하고 있었다.주위에 작전장군들은 아르센을 보며
호통을 쳐야할지,아니면 정중히 무시를 해야할지 갈등을 느꼈다.그것도 그럴것이 아르센의 위치는 참으로 애매했기 때문이다.
타타르족인 아르센은 어릴적부터 왕자의 호위를 위해 왕궁에서 함께 살았다.아르센은 보통의 사람은 가질수 없는-거의 동물
수준의 청각과 후각,그리고 시각을 단련하였다.보통사람보다 배나 빠르고 몇배는 힘이 센,왕자의 목숨을 지키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라온것이다.장군들의 고민은 아르센이 특수한 사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였다.바로 아르센의
위치인데,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아르센은 왕자의 개인호위무사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따라서 이번작전에도
아르센은 군인의 한사람으로서 참여한것이 아닌,왕자의 호위무사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것이다.그러한 위치에서 장군들에게
아르센은 작전에 참석시키기도,아니기도 애매한 존재가 되어버렸다.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아르센은 말위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 사람들만이 알아들을수 있는 소리로 이야기 했다.
"전방에 강력한 법력을 가진 존재가 있습니다."
300여명의 군인들 가운데 가장 민감한 감각을 지닌 아르센이 그러하다면 그러한것이다.
일제히 장군들은 병사들에게 조용히 경계태세를 취하라고 수신호를 보내었다.병사들은 느리지만 신중한 걸음으로 산개하였고
그러한 가운데 타온은 어느방향에서 올지 모르는 적을 맞이하기 위해 창을 빼들었다.긴장되는 한숨한숨,그러나 그들을
긴장케한 존재는 의외의 방향인 정면에서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왔다.군사들은 정면에서 걸어나오는 존재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사람과 너구리였다.여느 도인들처럼 누더기에 헤진옷을 입고,석장을 짚고 다가오는 사람은 딱봐도 '나 도인이요.'
라는 모습이였다.하나 특이한것은 어찌나 길게 자랐는지 광대뼈까지 내려온 흰 눈썹이였다.그냥 길가다가 봤다면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늙은선비나 구도자의 모습이였을것이다.그러나 정작 군사들의 입에서 탄성을 불러일으킨 존재는 사람쪽이 아니라
너구리였다.너구리는..........너구리였다.하지만 그 크기가 문제였는데,너구리는 어지간한 말 두필을 합쳐 놓은것 보다 더 큰 존재였다.병사들은그 크기에 압도되면서도 행여나 달려들면 한창에 꿰뚫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병기들을 힘주어 쥐었다.
그 도인과 너구리는 그러한 군사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석장를 짚은채 천천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