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바다에 몸을 담구고 있다 보면 멍하니 과거의 앨범을 뒤적이게 된다.

그렇게 목적 없이 파도에 몸을 맡긴채 눈부신 추억을 응시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망망
대해의 가운데에 표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살아 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맥질 하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외로움의 바다를 헤엄쳐 나가 불완전한 모래사장에 안착하더라도
말라 붙은 소금기를 완전히 닦아내진 못한다.

결국 나는, 우리는 영원히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겠지.

때문에 젖어 있는 하늘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낮은 산등성이를 보듬듯이 낮게 깔린 먹구름이 잔잔하게 떨어진다.

하얀 입김이 싸늘한 공기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져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상상속의 나는 떨어지
는 빗방울 사이를 힘들게 날개짓 해 너를 향해 날아간다.





"날 아직도... 좋아해?"

당연히 거부당할 것이라 생각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의미한 질문을 물었다. 마지막까지 지
독한 여자라고 생각하더라도 좋다. 그래서 이대로 앤에게 거부당한다면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 한해서 만큼은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상냥한 그녀는 사
랑이 가득 담긴 포옹과 함께 상냥한 말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런거... 당연하잖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프레이를 좋아해..."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행복에 압사당해 죽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부터 가슴까지
베어진 검상으로 인한 극심한 하혈.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머리가 멍한 와중에도 나는 바보처럼 '아
아. 그런 말을 들으면 죽어버릴 수가 없잖아'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손가락과 어깨, 가슴에서
올라오는 머리를 태워버리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나는 앤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소원했다. 그리
고 이제 앤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애타는 아쉬움을 원동력으로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떴다. 힘겹게
뜬 눈에 들어온 앤은 상처 입은 겨울새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후 이 가치 없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든 내 바람을 들어준 그 아이의 덕이
다. 나 뿐만 아니라 앤의 목숨까지도 지켜준 그 아이에게 어떻게든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지
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 그리하여 나는 지금 어느 중년 인간의 집에서 보호 감찰을 받는
중이었다. 기억을 잃었다는 거짓말을 단번에 믿어주었기 때문에 생활은 편리했다. 난동을 부려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한도 내에선 자유로이 행동하는 것도 용납해주고 있다. 편리하기 때문
에 마음대로 부려먹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육체의 생명만을 간신히 이어가는 마음의 찌꺼기의 생각일 뿐이다. 어깨부터 가슴
아래까지 이어진 보기 흉한 흉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은 천갈래 만
갈래 갈갈이 찢어져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싫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느껴야 하는, 파르스름히 날이 선 도검
으로 심장을 도려낸 것 같은 탈력감과 허무함이 싫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겨울밤 둥지에서 떨어져 구슬피 우는 아기새처럼 처절한 아우성을 그렸다. 매일밤 꾸는 앤
과 함께 가로지르던 유채꽃 흐드러지게 핀 동산의 꿈을 깨어 잔혹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이 싫었다. 꿈에서 깰 때는 한 번도 빠짐 없이 숨통이 틀어 막힌 정도로 가슴이 아파, 배개에 비명
아닌 비명을 담았다. 마르고 닳은 눈물샘에 짓 푸른 멍이 들 정도로 갈 곳 잃은 눈물 조각이 눈을
헤집고 나왔다.

앤을 만날 생각에 목욕재개를 하고 침대에 누울 때면 심장의 터질듯한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다. 꿈을 꾸면 앤을 만날 수 있겠지. 꿈에서라면 앤을 만날 수 있겠지. 그 터무니 없게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내 이름을 불러주겠지. 라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잠이 들어도 앤을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사랑에 들뜬 소녀가 되어 시간을 보낸다. 연애 편지
를 첫사랑의 서랍장에 넣을 생각을 하는 유치원생 마냥 잔뜩 흥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달
빛이 뉘엿뉘엿해진 시각에 가까스로 잠에 든다.

그리고 꿈을 통해나마 잠시 잠깐 볼 수 있는 앤의 다람쥐 같은 동그란 콧등을. 막 돋아난 봄나물
처럼 생기 있게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을. 투명한 바닷물에 젖어 햇빛을 반사하는 에메랄드
같은 두 눈동자를. 새하얗게 지붕을 뒤덮은 처녀설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이마를. 저녁 하늘을
어슴푸레 드리운 석양 같은 포근한 포옹을. 부모의 손가락을 알음알음 더듬어 가는 어린 아이 같
은 순수함을. 이 모든 아름답고 순수한 것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대리석에 조각을 새기
듯 기억의 조각을 새겼다.

그 이름 그대로 꿈결처럼 행복한 조각은 나와 앤중 누군가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마지막을 향해
치닿는다. 그리고 조각을 마치고 꿈에서 깨어나 텅 빈 손아귀를 깨달을 때마다 나는 타는 목마름
으로 외쳤다. 추억과 기억이라는 이름의 슬픔이라도 좋으니 내일의 꿈을 하루라도 더 꿀 수 있도
록 남겨 달라고. 그리고 동시에 잔혹하리만큼 비정한 현실을 찬물이 끼얹어 진 것처럼 냉철하게
깨닿는다. 앞으로 내 침대는 영원히 1인용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새벽부터 일어나 눈물로 배개를 가득 적시고, 탈력감에 정신이 멍해졌을 즈음에 몸을 일으킨다.
이후, 보여줄 앤이 없으니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는다. 광할한 우주의
티끌 같은 이 행성에서 혹시라도 앤과 마주치면 어떡하나 걱정해, 그렇게 보일 사람 없는 꽃단장
을 한다.

거울 앞에 서서 잠옷으로 입는 팬더 디자인의 파자마를 벗고 속옷을 입지 않고 알몸인 채로 고급
스러운 벨벳 원단을 한땀한땀 정성 들여 마감한 세련된 검은 드레스를 입었다. 목 언저리까지 단
정하게 여미어 고귀한 집의 영애 같은 느낌을 주는 드레스였다. 나는 오른쪽 엄지 손가락이 없었
기 때문에 왼손을 들어 어떻게든 지퍼를 올렸다. 예전에라면 이럴때 앤이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
니까'라고 푸념하며 상냥히 도와주었겠지만, 지금은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곁에 앤은 없
으니까.

한참을 끙끙거려 지퍼를 올리고, 굽이 낮은 백색의 에나멜 구두를 신은 다음 방문을 나섰다.

“좋은 아침이야. 프레이.”

때마침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중년 사내가 마시던 커피를 들어올리며 친한척
아침 인사를 한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아침 햇살의 역광 탓으로 사내의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꽤나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된다.

"말 걸지마. 쪼다야."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시하고, 승리감과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을 나왔다. 그 행동에는
배개를 흠뻑 적실 정도로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낸 직후의 무력감의 탓도 있었겠지만 가까운척 친
한척하며 다가오는 사내가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에서 우주의 모든 인간보다도 수억 배는 소중한 앤의 자리를 대신하려 하는 기분 나쁜 중
년 사내. 몸이 모래가 되어 모래사장 가운데의 한 톨 알갱이가 된다 하더라도 좋은 감정이 생길리
가 없다. 그렇지만 사내는 마음에 손톱만큼의 빈틈도 없이 앤이 가득 들어찼으면 하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려 왔다.

그는 우연하게도 외딴 별에 불시착한 나를 주워 기사 의회와 연합군 본부가 있는 이곳까지 데려
왔다. 적발되는 순간 재판 없이 즉결 처분이 가능한 중범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기억
을 잃었다는 말 한마디에 흔쾌히 결정했다.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이 사내가 기사로서의 의무를
다해 단칼에 내 목을 쳤더라도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계에는 괴수와 앤만이 있
을 뿐이니까. 인간이라는 아해들이 무엇을 하든 정말 나와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지만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것은 집에는 한 명의 거슬리는 인간 밖에 없었지만 도시로 나온 순간 수천만의 역겨운 인간을 마
주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년의 집은 고급 주택가가 모여있는 도심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조
금만 걸어 나가면 수십 대의 차가 다니는 큼지막한 찻길이 나온다. 출근 시간인 지금이라면 분명
인간 냄새가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다시 집에 돌아가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역겨움을 무릅쓰고 시야
에 들어온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마음 먹었다. 대신 큰길로 나가지 않고 고급 주
택가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 녹지 조성을 위해 세워진 것이 분명한 별다른 특징 없는 공원에 들
어갔다. 꽤 넓은 공원의 중심부로 들어가 가장 먼저 눈에 띈 볼품없는 벤치에 앉아서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에는 이따금 동물을 닮은 뭉게 구름이나 달달한 솜사탕처럼 보이는 새털 구름이 여유롭
게 유영하고 있었다. 기사단에 들어가기전 앤과 나는 해가 지기 전까지 도시 외곽의 아무 것도 없
는 언덕에 누워 지나가는 구름에 이름을 붙이며 놀던 것이 기억나, 나는 또다시 기분이 울적해졌
다.

앤이 기사단에 들어가기 전 전쟁 고아들을 위한 군의 배식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때의
이야기다. 그 배식은 제아무리 시장을 반찬으로 해도 맛을 고려한 흔적을 개미 발뒤꿈치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비쩍 곯은 배를 달랠 수는 있지만 뭔가가 모자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감질날 만큼의 양밖에 주지 않았다.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멀건 옥수수죽 같은 배식을 받아 맛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목에 들이 붙듯이 허겁지겁 먹고는 한 번 더 줄을 선다. 운 좋게 배식 담당의
군인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면 그 형편없는 배식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었다. 맛없고 식
고 희멀건 옥수수 죽을 먹더라도 앤과 함께 식사한다는 사실에 사심없이 기뻐했다.

그렇게 배식을 받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어져, 우리는 배식 장소에 가까운 언덕에 눕다시피 앉아
이 구름은 기린을 닮았다, 저 구름은 펭귄을 닮았다고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 마냥 떠들어 댔
다. 그것은 뛰어놀면 빨리 배가 꺼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단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래는 기묘한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그때부터 나는 마지막
마음을 앤의 아직 채 부풀어 오르지 못했던 가슴에 묻어 두었던 것이다.

부모라던가, 자매라던가 하는 간단한 말로는 영원히 설명할 수 없는, 입밖으로 내는 것조차 성스
러운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앤의 선이 가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면, 그녀는 어린아
이 같은 천진함으로 마주 내 볼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와 가볍게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는 쑥스러운 얼굴을 내 품에 묻곤 했다. 그 모습이 진심으로 하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랑스럽고, 나 같은 것은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태양처럼 눈부셨다. 그럼에도 함께 있고
싶어서. 곁에 머물고 싶어서. 앤에게는 나밖에 없다고. 나에게는 앤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설득
력없는 주장을 했다.

꼬르륵

지금 내 품에 앤이 없는 서글픔을 참지 못하고 한 떨기 눈물 방울을 떨구었을 때, 분위기를 파악
하지 못한 뱃속에서 생뚱맞은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나는 왠지 부끄러운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
럼 얼굴이 붉어졌다. 누가 볼까봐 재빨리 얇은 소매자락을 들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
쳤다. 눈물샘이 마르는 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눈물을 흘린지 몇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직 눈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신기했지만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로 마음 먹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뭔가 먹을 것을 들고 나올 것을 하고 조용히 후회하며 드레스의 주머니를 뒤
져봤지만 동전 한푼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이 도시에 온 이후 혼자서 뛰쳐 나온 것은 이번
이 처음이다. 먹고 싶은걸 메이드 인형에게 말하면 다음 식사 시간에 식탁에 올라와 있는 편한 생
활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먹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분좋게 잊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지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리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확 들어오는 원색의 유아틱한 책가방을 매고 공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세상 물정 모르는 꼬
마 아이 두 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내 입가가 스르르 올라갔다.

"럭키."

라고 나는 별 감정 없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사실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핏덩이들은 무엇이 재미있는지
연신 키득거리며 떠벌떠벌 입을 놀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나와 비슷한 키를 가진 허약하
고 별볼일 없는 저학년들. 앤이 곁에 없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걸까. 남이 하루하루를 눈물로
연명하고 있는데도 멀쩡히 웃을 수 있는 꼬맹이들의 모습에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불길처럼 치솟는 것을 느꼈다.

나는 현실의 무서움을 가르쳐 주자는 생각을 하며 발끝을 톡톡 치는 발걸음으로 꼬맹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자신들을 향해 곧장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둘 중 덩치가 큰 아이가 나
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아이를 보호하듯 앞에 서며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친다.

"뭘 봐!"

이래서 나는 인간 꼬맹이가 싫다. 버릇없고, 짜증난다. 이것은 시냇물처럼 흘러간 시간을 뒤로 되
돌릴 수 없다는 사실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뒤에 서 있던 작은 아이도 상황이 이상하
다는 것을 느꼈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나는 두 명의 꼬맹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윽 살펴보았다.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자란 연약한 사내아이들. 한 명은 칙칙한 갈색 머리카락,
나머지 한 명은 짙은 흑발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이 길을 따라 있는 공원의 입구와는 거리가 있다. 숲은 없지만 나나 이 꼬맹이들 정도의 작은 키
라면 중간중간 있는 풀숲이 시선을 가려줄 것이다. 아직 등교하기엔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방
해할 다른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기선제압을 위해 가까이 있는 덩치 큰
아이의 종아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얻어 맞은 아이는 다리를 부둥켜 안고 자지러지며 쓰러졌다.
가볍게 라고 해도 어린아이 수준의 일격이 아니었으니 아파 날뛰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으악!"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으로 쓰러진 녀석은 아프다며 악바리를 지르며 바둥거렸다. 뒤의 작
은 꼬맹이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아마 이때의
내 얼굴은 장난감을 발견한 악귀처럼 무시무시하게 웃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또한 어
쩔 수 없었다. 앤이 내 곁에 없는데도 웃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버릇없는 꼬맹이와 공포로 움찔거리는 유약한 꼬맹이
를 보고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상외로 꼬맹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재미 있었기 때문에 나
는 무심코 본심이 드러났다.

"있는 돈 다 내놔."

아아, 최악이다. 최대한 상냥하게 말할 셈이지만 이 녀석들이 외로움도 슬픔도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류 악당 같은 대사가 무심코 튀어나왔다. 내뱉고
나서야 이렇게 말할 셈은 아니었는데 라고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손을 내밀었다. 연약한 인상의 꼬맹이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눈에 가득 눈물을 글썽거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짜증이 치솟았다. 나는 네녀석 나이때 옥수수 반
토막을 위해 흙먼지를 묻히고 구걸을 해야 했다. 멍청한 자식.

"네?"

"돈. 내놓으라고"

꼬맹이는 넘어져서 울음과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자신보다 덩치큰 아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
더니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의 여유를 잃고 초조해 하는 모습이 뻔히 드러난다.

"도, 돈 없어요."

나는 동전으로 불룩한 녀석의 오른쪽 주머니를 주시했다. 이렇게 까마득히 어린 녀석들의 거짓말
파악하는 것 정도야 식은죽 먹기다. 이 녀석은 곤란할 때면 일단 변명부터 내뱉고 보는 전형적인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나는 새벽의 공동 묘지에서나 느낄 법한 소름 돋는 서늘함을 담아 겁을 주
기 위해 느릿느릿 말했다.

"어쭈. 뒤져서 나오면... 알지?"

거짓말 하는 것에 대한 짜증으로 무심코 목소리에 살기가 실렸다. 녀석은 어지간히 맞는 것이 무
서웠는지 심장에 서리가 내린 염소 같은 얼굴을 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쳤다. 이미 내 시
선을 보고 거짓말이 들켰다는 것은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거짓말이라고 고백하기엔 용
기가 부족했는지 필사적으로 소리친다.

"지, 진짜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리고 마침 쓰러졌던 녀석의 숨이 안
정되고 있었으므로 한 번 더 배를 걷어차 주었다.

"컥."

꼬맹이의 입에서는 마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발끝이 뾰족하진 않지만
꽤 단단한 에나멜 구두다. 힘을 적당히 조절해서 명치를 걷어 찼으니 죽지는 않겠지만 지옥같은
고통을 느끼겠지.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이제 숨도 쉬지 못하고 간질병 환자처럼 움찔 움찔 경련
을 일으키며 게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직 주먹 맛을 보지 못한 녀석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공포에 질려 졸도할 것처럼 몸을 부
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마디 소리치는 것 만으로 오줌을 지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야."

"네, 네!"

녀석은 잔뜩 군기가 들어간 초년병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공포를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서 양
손을 옆구리에 딱 붙인 채 눈을 꼭 감고 있다. 나는 발을 들어 직립상태인 녀석의 오른쪽 주머니
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짤랑짤랑하는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녀석은 덫에 걸린
토끼같은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초등학생 가량의 꼬맹이가 오줌을 지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못된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
다. 이 이상 괴롭혀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군말하지 않고 돈을 내놓으면 보내주
마라고 선선히 약속했다. 얻어 맞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오줌싸개는 자기 주머니에 있던 돈 뿐만
아니라 눈앞의 게거품을 뱉어내는 녀석의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서 공손히 헌납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돈을 받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쓰러져 있던 녀
석은 멀쩡한 녀석이 알아서 데리고 돌아갈테니 말이다. 그후 나는 콜드 스톤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중간 사이즈의 초코맛 3인용 아이스크림컵과 스트로베리와 치즈케익 맛의 와플콘
하나를 샀다. 어린 아이 코 묻은 돈까지 뺏어가며 아침 일찍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는걸까
고민도 됐지만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은 재빨리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한 두대 얻어 맞았겠지
만 좋은 인생 경험을 시켜준 것이니까, 오히려 이쪽이 감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가 된 후 앤과 함께 연습 시간을 땡땡이 칠 때마다 먹던 아이스크림과 비교할 수 없었지만 방
금 산 와플콘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딸기와 치즈맛이 잘 어우러져 매우 맛있었다. 그리고 3인용
초코 아이스크림의 비닐 포장을 바닥에 휙 버리고, 난 다시 아까 앉아 있던 벤치로 갔다.

한숟갈 두숟갈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퍼 먹으면서, 멍한 머리 속으로 다시 한 번 앤을 떠올린다.

앤은 내가 술 냄새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따금 맥주를 마셨다. 나는 아랫배가 나올 거라
고 큰소리로 협박했지만 앤은 '이미 나왔어' 라고 신랄하게 받아치곤 했다. 만약 내가 정말 싫어해
서 투정을 부렸다면 앤은 단호하게 술을 끊었었을 것이다. 내가 굳이 떼를 쓰며 말리지 않았던 것
은 적당히 취기가 올라왔을 때의 앤이 보여주는 귀여운 술주정 탓이었을 것이다.

술이 조금 들어간 앤은 복숭아 같은 볼을 발그레 붉히고 중년 아저씨같은 게슴치레한 웃음을 지
은채 다가와 나를 꼬옥 끌어 안곤 했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에 코를 박고 평상시에는 내가 아무리
해달라고 졸라도 낯뜨겁다며 해주지 않는 말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속삭여 준다. 그것들은

'우훗, 좋은 여자.' 라던가

'프레이, 너무 좋아.'라던가

'로리라서 좋은게 아니야, 프레이라서 좋은거야.' 라던가

'너, 내 것이 되어라.' 라던가

'얼마면 되겠어.' 라던가

하는, 정말이지 말하는 쪽도 듣는 쪽도 흐물흐물 녹아버릴 것 같은 진한 사랑의 속삭임이었다. 취
기로 얼굴이 발그레해진 앤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된 나의 사진이, 지금은 앤의 지갑
속에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앤이 사랑스러운 말을 해주는 것들이 너무 좋았다. 술냄새가 싫네, 낯뜨겁네하는 핑계를 대
면서 바둥바둥 도망치는 척 했지만 사실은 솔직해진 앤에게 홀딱 반했기 때문에 결국 도망치지
못한다. 어쩐지, 그 시절의 내가, 너무나도 부러워 졌다.

앤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향기로운 앤만의 내음은 맡고
있다보면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나를 나른하게 만들곤 했다. 바닐라의
향 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보다 상큼했고, 복숭아의 향 일까 생각하면 그것보다 깔끔했고, 배의 향
기 일까 하면 그것보다 달콤했다. 훈련을 끝내고 피곤해 낮잠을 자고 있는 앤을 등뒤에서 살짝 껴
안고 자거나, 앤의 무릎 위에 앉아 서로 밥을 먹여주거나, 앤의 배개에 머리를 박고 킁킁거린다거
나 할때면 정말이지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행복하고 여유로웠다. 그런 나를 보고 있을 때면 앤은
'고양이를 기르는 것 같아'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다. 하늘이 뿌옇게 되었다. 동시에
아무 이유 없이 격렬하게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을 일부러 외면한 채 눈을 감는다.







내가 잠에서 깬 것은 누군가의 짜증날 정도의 무례한 외침이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잠을 깨운
건방진 녀석을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자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두 명의 꼬맹이와 경찰복
을 입은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꼬맹이들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경찰에게 뭐라뭐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는 졸
음으로 머리가 멍했기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앞의 어른이 경찰이라는
것은 깨달을 수 있었다.

경찰이 한숨을 내쉬며 애들을 달래고 있는 사이, 나는 벤치에서 뒤로 훌쩍 뛰어올라 숲 덤불 안으
로 뛰쳐 들어갔다. 이후 도망치는 것은 쉬웠다. 몸을 최대한 낮춘 채로 달리는 것 만으로 평범한
인간은 나를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도망치면서도 나에게 돈을 빼앗긴 두 꼬맹이들에게 욕지기
가 나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은 좀 아프겠지만 인생에 도움되는 나름 귀중한 경험을
시켜줬건만, 은혜도 모르고 경찰을 데려오다니. 배은망덕한 녀석들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 인간
이란...

공원을 벗어난 나는 큰길로 나갔다. 큰 건물에 걸린 벽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10시. 학생들은 학
교에, 직장인들은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지라 하더라도 사람이
적었다. 그것에 안도하며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었다.

그때, 내 귀로 또박또박한 말투로 공손히 이야기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플라네타리움은 어떨까요? 어떤 때라도 결코 꺼지지 않는 아름답고 영원한 빛. 온 하늘의 별들
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시선을 끈 목소리는 곳은 어느 백화점의 정문에 서있는 어떤 여성형 안드로이드였다. 나보다
약간 큰 작은 몸집. 좌우로 갈라진 옅은 빛깔의 긴 머리카락. 한쪽 귀만이 툭 튀어나온 기묘한 모
양의 귀장식. 머리에 살짝 씌워진 모자와 포장용 리본 같은 긴 머리 장식. 그리고 무릎 위쪽까지
내려오는 짧은 원피스.

그녀는 화사한 꽃다발을 들고 사심 없는 미소를 지으며 손님이 없는 거리에 대답 없는 환영의 인
사를 보내고 있었다. 한 두명 행인이 지나갈 때면 허리를 깍듯이 숙여 인사한다. 단순 손님 접대
용의 저가 인형이었다. 나는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인간과 이야기할 바에는 인형과 이야기하는 쪽
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은근슬쩍 다가가 보았다.

"하나비시 백화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 백화점의 자랑인 플라네타리움이 오늘의 투영
으로 시리우스 성계의 모습을 비춘답니다."

내가 자신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인형은 재빨리 허리를 세워 밝게 환영했
다. 그리고 나는 궁금했던 바를 묻는다.

"플라네타리움이 뭐야?"

그러자 앳된 얼굴의 인형은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깊숙이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그만 무례를 범하고 말았네요. 저희 플라네타리움은 저희를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밤하늘을 보여드린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밤하늘?"

밤하늘이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잠자기 전 창문을 열고 고개를 올리면 되는 일이다.

"네."

하지만 인형은 장난 같지 않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 괜찮으시다면 11시에 있을 투영을 보고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오늘은 이에나씨도 분발하
실테니 분명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실 수 있을거에요."

나는 슬쩍 몸을 돌려 백화점 앞 만남의 광장에 서 있는 시계탑을 보았다. 10시 30분. 점심시간까
지 시간이라도 떼울 속셈으로 나는 인형이 건내준 팜플렛을 받아 백화점 옥상으로 갔다. 입장권
을 사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돔으로 된 상영관. 상영관은 꽤 넓었지만 손님은 1/10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매우 한산했다. 나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팜플렛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
다. 플라네타리움이란 돔 형태의 천장에 상영기를 이용하여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는 일종의 레이
져 쇼라고 한다. 어째서 이런 것을 돈까지 내고 볼까, 생각해보았지만 지상에서 보는 별과 실제의
별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설명이 쓰여있었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11시가 되자, 백화점 정문에서 홍보하던 그 인형이 상영관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인
형은 이 투영의 진행자로, 호시노 유메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상영관 중앙의 커다란
투영기는 이에나씨로 이 별에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만들어진 이 플라네타리움의 역
사와 같은 기계라고 했다.

자질구레한 안전 사항과 플라네타리움의 역사를 짧게 언급하고 인형은 상영을 시작했다. 상영관
전체에 완전히 불이 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천정에 하나 둘 별이 떠오
르기 시작했다.

상영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인형의 감수성 어린 설명은 태초의 어둠에 빛이 생기는 과정이었으
며, 별의 탄생과 죽음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나같이 낭만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눈시울을 붉힌
채 어린 시절 별을 꿈꾸던 때를 떠올릴 정도로 훌륭한 상영이었다. 하지만 나는 약 45분 정도 되
는 짧은 상영 시간 동안, 인형의 설명에 집중하는 대신 어느 한 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리우
스 성계 뒤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아린성. 앤과 나의 추억이 잠든 슬프고도 아름다운 별이었다.
내 머리 속은 분명 구멍 투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앤으로 채워져 있었다.

상영이 끝나고 손님들은 각자의 여운과 감동을 끌어 안은채 하나 둘 상영관을 나섰다. 나도 머리
속에 그리던 아린성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때, 남매로 보이는 두 명의 꼬맹이가
상영관 중심의 인형에게 뛰어갔다.

"저기, 유메미야."

오빠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 손님. 무슨 일이신가요?"

상영이 끝나고 기계 장치를 정리하던 인형은 재빨리 접대 모드로 돌아가 밝게 대답했다.

"아까... 천국이라는 별이 있다고 했잖아."

집중해서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현재의 기술로
는 갈 수 없는 우주의 끝에는 하늘의 별이 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천국이라는 또 다른 행성이 존
재한다는, 별에 관한 낭만적인 전설이었다. 인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빠는 지난달에 아린성에 파견 갔다가 괴수한테 죽었는데... 천국에 가셨을까? 우리 아빠
는 아린성에 묻혀서 천국에 못가는거 아니야?"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으로 소년과 소녀는 묻는다. 육신이 묻혔으니 천국에 가지 못하는건 아닐까
하고. 인간들이 즐겁게 사는 인간의 천국으로 말이다. 하지만 인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육
체는 상관 없으며 분명 천국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라는 정석적인 대답을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
하다. 인형에게 창의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니까 말이다. 아이들은 반색을 하며 안심한
표정으로 상영관을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왠지 묻고 싶은 것이 생겨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남매들처
럼 인형의 앞에서 질문하고 있었다.

"괴수에게도 천국이 있을까?"

대답은 정해져 있다. 인간의 적인 괴수에게 천국이란 없다. 이 인형의 대답은 분명 그렇게 대답할
테지. 이것 또한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괴수에게도 천국이 있답니다."

하지만 있다고, 인형은 즉답했다.

"천국에서는 괴수도 사람도 모두 행복하고 사이좋게 살 수 있답니다. 천국이란 바로 그런 곳이에
요. 손님."

인형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천국에서라면 나 같은 괴수도 앤과 함께 사이좋
게 뛰어 놀 수 있다고 말이다. 또다시 저혈압인 앤의 잠을 깨우거나, 서로 아이스크림을 먹여 준
다던가, 서로 머리를 빗어준다던가 하는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음으
로서, 앤이 북부 기사단으로 파견나가 볼 수 없었던 세월 동안 착실하게 쌓아온 슬픔이 제방이 무
너진 둑처럼 속수 무책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호시노 유메미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 안고 통곡하듯 울었다.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 던지고
쓰러지듯 메달려 펑펑 우는 금발 여자아이와 자신의 잘못으로 손님이 울음을 터뜨렸다고 어쩔 줄
모르고 연신 사과만 하는 여성형 로봇은 정말이지 웃긴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눈물을 멈
출 수 없었다. 이런 나조차도 괜찮을 거라고, 앤 이외의 존재에게 확인 받았다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앤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꼬맹이라는 것을 말이다. 머나먼
시공을 넘어서 전하지 않더라도 앤은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왠지 오늘은 꿈에서 깨더라도 눈
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기



몇일이 지나고

"프레이. 너 이 주변에서 싸움 한 적 있어?"

"내가 뭐하러 꼬맹이들 삥을 뜯는다는 거야? 날 무시하는 거야? 웃지기마, 비리비리한 약골 녀석
주제에."

"저기, 나 금품 갈취 이야기는 한 적 없는데."

"......"

"......"

"...폭력을 휘두르는 금발 여자아이를 조심하라고 주택 주민들에게 훈방이 내려졌으니까. 조심
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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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나이트런의 단편 팬픽입니다.


프레이가 살아있다는 가정 하에, 프레이의 마음은 어떨까 고민해보다가 쓴 글입니다

나름 잘써야지 잘써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써졌군요...

한숨...


나이트런 팬카페 공모전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아, 프레이가 지낼 곳을 대주는 저 중년 사내는 다른곳에 연재중인 나이트런 장편팬픽의 오리주입니다.


ps : 예전부터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케릭도 찬조 출연을... ~_~


덕을 섭렵하신 분들이라면 딱 하고 알아채시겠지만요.


Bomberic Angel

2009.10.23 19:34:35
*.200.3.11

프레이빠....

별소나기

2009.10.24 13:00:31
*.217.6.6

프레이 좋죠. 프레이

위키매니아GS

2009.10.27 14:27:09
*.114.22.42

플라네타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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