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야구 제대로 즐기기 -06- 사인

조회 수 2505 추천 수 0 2009.10.27 00:17:16

6. 사인

 

야구중계를 유심히 보면,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포수가 쪼그려 앉은 다리 사이로 뭔가 열심히 손짓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투수와 포수간의 사인이다. 물론, 상대팀 선수가 간파 할 수 없도록 아주 복잡하게 섞어서 사인을 쓰지만, 기본적으론 이렇다.

 

◎일반적으로 포수가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두드리면, (우타자의 경우) 몸쪽을 던지라는 의미이다. 반대로 오른쪽을 두드리면, 바깥쪽이라는 뜻이다.

◎포수가 검지 손가락을 펼치면 직구이다.

◎포수가 검지와 중지를 펼치면 브레이킹 볼(커브나 슬라이더) 이다.

◎포수가 엄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손가락을 모두 펼친 채 흔들면 체인지 업 이다.

◎포수가 엄지 손가락을 펼치면 피치-아웃 이다.

◎포수가 주먹을 쥐기만 하고 아무런 제스춰를 하지 않았다면 바로 이전과 같은 구질과 방향의 공이다.

 

이는 단순한 기본적인 예시일 뿐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투수와 포수간에 경기 시작 전, 어떠한 사인을 약속 해 놓고는 포수는 세 가지의 사인을 무분별 하게 보낸다. 그 세 가지 중에 한가지 사인에만 경기 전에 미리 맞춰두었던 사인을 슬쩍 추가시킨다. 주자가 2루에 있는 경우라면, 포수의 사인이 훤히 2루 주자에게 보이기 때문에, 사인 엿보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엿보다가 걸린 선수는 다음 타석 때 빈볼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인에는 비단 투수와 포수간의 사인만 있는 게 아니다. 여간한 베테랑 포수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포수는 결정적인 상황이 되면 자기 팀의 벤치를 바라본다. 감독이나 베터리 코치의 사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덕 아웃의 감독과 코치 역시 유니폼, 모자 챙, 벨트, 눈, 코, 귀들을 연신 만져대며 사인을 보낸다. 또한 특정 타자를 잡기 위해 수비쉬프트 사인도 낸다. 가끔 외야의 선수들이 정상적인 수비위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외야수들은 자신의 덕 아웃을 열심히 처다 보면서, 한쪽 손을 옆으로 벌린다. 이쪽으로 이동하겠다 라는 뜻이다. 수비측만 사인을 쓰는 건 물론 아니다. 공격측에서도 사인을 이용한다. 1루 바깥쪽과, 3루 바깥쪽에는 각각 베이스 코치와 타격 코치가 자리 잡는다.

 

○1루 코치의 역할

 

1루로 출루하는 선수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토닥이며 잘했다고 칭찬한다. 그러고는 주루에 거추장스러운 팔꿈치 보호대와 정강이 보호대, 배팅장갑을 건네 받는다. 발빠른 선수가 나갔을 경우라면 선수에게 도루용 장갑을 준다. (슬라이딩 할 때 손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한 두꺼운 장갑을 말한다. 야구선수들의 야구화 바닥에는 축구화의 스파이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스파이크가 악어이빨처럼 박혀있다. 도루가 장기인 선수들은 이 스파이크 이빨이 입벌리고 지키는 루를 향해 매일같이 용감하게 손을 뻗는다) 또한 덕아웃의 감독과 수석코치, 1루코치는 스톱워치로 투수가 딜리버리를 시작하여 포수에게 공이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잰다.(약 1.44초가 평균이다. 가끔 덕아웃을 보면 감독이 손에 뭔가를 들고 체크하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포수가 투구를 받아 2루에 공을 던지는 시간도 아울러 잰다(약2초정도가 평균). 그리고 두시간의 합을 출루한 선수에게 말해준다. 주자는 자신이 베이스 라인을 따라 전력질주할 때 걸리는 시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코치의 조언에 따라 뛸지 말지를 결정한다. 혹은 히트 엔 런 등 의 작전이 있음을 1루수 몰래 귀뜸 해 준다. 또한 코치는 상대 투수의 견제동작을 연구하고 견제구가 날아 올 때면 “돌아와!”라고 마구 소리치면서 팔을 휘젓는다.

 

○3루 타격코치의 역할

 

3루 타격코치는 보통 덕아웃의 감독과 타석의 선수를 이어주는 사람이다. 덕 아웃의 감독이 3루 코치에게 사인을 내면, 3루 코치는 이를 타석의 타자에게 사인을 보내 준다. 타자는 이를 보고 강공이나, 희생번트, 기습번트, 그래그 번트, 히트 엔드 런 등 ‘작전수행’을 한다. 물론 상대 투수를 기만하기 위해 가짜 사인을 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안타 이후에 인플레이 상황일 경우, 루를 전력 질주하는 주자들은 공이 외야 어디에 있는지 인지할 겨를이 없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1루에 주자가 있고, 다음타자가 우익수 앞 안타를 쳤다. 1루의 주자는 타구가 위로 솟구치지 않고 라인드라이브로 강하게 뻗어나갔으므로 플라이볼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무조건 2루를 향해 전력질주를 한다. 주자의 눈이 뒤통수에 달려있지 않은 이상 우익수가 그 공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길이 없다. 만일 우익수의 실책으로 공을 빠트렸고 공은 펜스까지 데굴데굴 굴러갔고, 중견수의 커버 플레이가 늦었다면, 1루 주자는 2루가 아닌 3루나 홈으로 득달같이 뛰어 들어야 한다. 바로 이때 1루 주자는 3루 코치의 행동을 본다. 3루 코치가 “멈춰!”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두 손을 앞으로 하고 마구 흔들면 2루로 귀루해야 한다. 혹은 3루 코치가 3루를 가리키며 두팔을 쭉 뻗으면 3루에 슬라이딩 하라 라는 뜻이다. 혹은 3루 코치가 한층 시뻘게진 얼굴로 “뛰어! 뛰어!”를 외치며 한팔을 풍차처럼 미친 듯이 돌리면 앞뒤 생각 하지말고 무조건 내달리란 뜻이다.

 

사인과 싸움

야구경기, 특히 포스트 시즌(정규시즌이 끝나고 상위권팀들이 챔피언 자리를 놓고 다시 승부를 겨루는 시즌. 영어로는 플레이 오프<Play Off>줄여서 PO라고도 한다.)이 되면 단판으로 희비가 갈리는 진땀승부가 계속 되기 때문에 선수들이나 감독, 코칭 스태프들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게 마련이다. 정규시즌 중이었다면 그저 쓰게 웃고 넘길 사소한 문제거리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이 '사인훔치기'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감독, 코칭 스태프들이 덕아웃에 멀거니 앉아서 경기나 관전하고 있으라고 구단에서 연봉 주는게 아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던지고 받고 치고 뛰고 하는 동안에 그들은 선수들을 위해 갖가지 뒷일을 한다. 그 중 하나가 상대팀 '사인 분석'이다.

플레이 오프 시즌을 보자. 어쨋든 야구는 사람이 하는 경기이다. 사람의 어깨로 140~150km/h의 직구를 매일같이 던질 수도 없고, 그렇게 날라오는 공을 매일같이 때려내서 홈런을 만들 수도 없다. 어쨋든 사람에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134경기의 정규시즌동안 서로가 서로의 장단점은 이미 파악이 다 끝나있고, '누가누구한테 더 강하드라' 정도의 기본적인 전력분석은 예전에 끝나있다. 거기에 덧붙여, 정규시즌 상위 4개팀만 계단형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뤄진다. 말이 상위 4개팀이지, 4강안에 든 네팀의 전력은 종이 하나 둘 차이에 불과하다. 거기다가 리그전도 아니고 토너먼트 방식이니 정규시즌처럼 '2승1패면 성공' 이런 것도 통하지 않는다. 한경기 한경기가 피를 말리게 된다. 투수든 타자든 공하나 배팅 한번에 일년농사가 결정지어지다 보니 정규시즌처럼 설렁설렁 할 수조차 없다. 결국 이 극한에 몰린 선수들은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도와줘야 한다. 이들이 가장 쉽게 도울 수 있는게 바로 '상대팀 사인 분석'이다. 사인분석이란게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게 절대 아니다. 상대팀의 정규시즌 134경기 전체를 녹화한 비디오를 돌리고 돌리면서 그 비디오에 녹화된 포수의 사인과 코치, 감독의 사인 형태를 유심히 관찰한다. 상대팀도 이와 같은 작업을 하고 있으며, 또한 정규시즌 과는 또 다른 '변형된' 위장 사인을 들고 나올게 뻔하다. 우리팀의 변형된 위장사인을 만들면서도 한켠으로는 상대방의 위장사인을 예측 해봐야한다. 속이고, 뒤틀고, 감추고, 위장까지 플레이 오프의 덕아웃(구장내에 감독 코치 선수들이 대기 하는 장소)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된다. 한경기, 한경기, 한타석, 한타석에 1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느냐 마느냐하는 판국이라 이 덕아웃의 사인 전쟁은 극한을 치닫는다. 자. 여기까지는 '사인 분석'으로 용인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인 훔치기'는 다르다. 이 치열한 두뇌싸움은 어디까지나 덕아웃 안에서의 이야기일뿐, 그라운드 안의 선수끼리의 '사인 분석'은 '비겁한 일'로 간주된다. 특히 2루에 주자로나간 선수는 상대팀 포수가 내는 사인을 훤히 볼 수 있고, 같은팀 타자와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그자리에서 포수의 사인을 '훔치고' 같은 팀 타자에게 사인을 '보내는' 일종의 커닝 같은 짓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반칙이다 라고 명문화 되어있지는 않다. 다만 '야구경기에 지장을 주는 행위' 에 포함될 뿐이다. 객관적인 증거도 없는데다 본인이 아니라고 잡아때면 그만인 것이다 보니 상대팀 투수는 꾹 참고 있다가 다음 회에 사인 '훔치기'를 했던 선수가 타석에 올라오면 가차없이 빈볼(투수가 타자의 머리쪽으로 공을 던지는 행위. 명백한 반칙성 투구이다)을 던지게 마련이다. 안그래도 활활 타는 장작더미같은 분위기에 휘발유를 드럼통으로 쏟아붇는 일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벤치 클리어링(선수들이 경기장안으로 난입하는 행위 '선수들이 있어야할 벤치가 비워진다' 라는 뜻)이 일어나고, 경기장 밖이라면 직계 선후배, 친한 형 동생들 끼리 얼굴 벌겋게 물들이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뭘 어쨌다고 그러냐' 며 서로가 서로에게 삿대질 하기 바쁘게 마련이다. 눈살 찌푸려지는 일 이기도 하지만, 한켠으로는 그 재미있다는 '싸움구경'이기도 하다. 서로가 주먹다짐이라도 나지 않는다면(선수에게 몸은 재산이나 마찬가지다. 주먹다짐은 말도 안돼는 일이다) 다음경기때 시원하게 화해하고 끝날 일이며, 팬들에겐 또 하나의 볼거리라고 생각한다.

 

-계속-


Nemo

2009.10.27 12:32:19
*.142.173.114

고등학교까지 야구부하던 사람을 알게되서 처음으로 물어본게 사인이었는데 이런식이라고 하더라구요

"오늘은 코를 만지고 세번째 하는게 진짜 사인, 만약에 중간에 왼쪽어깨를 치면 다시 처음부터-"

천고

2010.04.15 02:47:02
*.93.179.172

아래 글도 전부 다 읽어 보았습니다.

책으로 펴 내신다면 사겠습니다.  저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읽다가

야구의 재미에 빠져버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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