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도시 - 비 내리는 밤

조회 수 2969 추천 수 0 2010.03.26 17:29:23

 

 

 

(1) 비 내리는 밤.

 

 

 

"아 씨발. 왜 오밤중에 출동 걸고 지랄이냐고. 이 가게는 C2랑 계약도 안했데?"

메기를 닮은 성진이 녀석이 도발적인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석궁의 화살을 장전시키는 중이었다. 순간 못들은 척 하려다가 계속 말을 걸 것 같아서 대답해주기로 했다.

"가게 주인이 관리관 친구라던데."

"좆같네.."

어두운 밤. 새벽 2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주위의 텅빈 옷가게들과 식당들은 이미 모두 가게를 정리했고, 거리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석궁의 몸체로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밤에 출동한 것도 엿 같은데 비까지 오다니. 지랄 같은 밤이었다.

"어, 망령은 꼭 이럴때만 나타난다니까."

이런 날이니까 나타나지. 나는 큰 키에 각잡힌 체격을 한 우의를 입은 남팀장을 쳐다보았다. 우리 악령퇴치1팀의 명령권자. 그럭저럭 잘 생긴 외모. 남자다운 성격. 근육질 몸매까지 갖추었지만 텅텅 빈 꼴통과 멍청한 언행으로 그 빛이 바라는 놈이었다. 나는 팀장의 면상을 한심한 듯 처다보고 나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1팀 패거리들 모두 다 피해망상에 빠진 남자의 악몽 같았다. 똑같은 남색 비옷. 똑같은 석궁. 그들 모두의 표정에서 피로와 음울함만이 엿보였다.

"온다!"

크르르르릉!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뻥 뚫린 쇼윈도우 저편에서 들려왔다. 그저 그런 아동복매장. 월래라면 마네킹이 멍청한 표정으로 길거리를 보고 안에는 유치한 색상에 5살 이상의 아이라면 절대 피하고 싶어할 옷들이 진열되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자리는 무슨 쓰나미라도 당한것처럼 철저히 분쇄되버렸다. 오늘 우리가 저 안의 '문제'거리를 처리해준대도 월래 있던 모든 걸 복구하는데는 꽤나 돈과 시간이 들어갈 터였다. 내 알바는 아니지만.

놈은 시커먼 털복숭이 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길이가 2미터에 달하고 어금니 네개가 주둥이 바깥으로 튀어나온데다, 한밤중에 녹색으로 빛을 발하는 눈을 가진 짐승을 개로 분류 하는게 어불성설이기는 하다. 하지만, 딱히 다르게 분류할 방법이 없다.

그 놈은 지금 상황이 꽤나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월래라면 이계(異界)의 황량한 들판을 쏘다녀야 할 놈이다. 먹을만한 고깃덩어리를 탐색하고 입맛을 쩝쩝 다셔가며 뜯어먹는게 녀석의 일과였겠지. 하지만 일단 여기로 넘어온 순간 식사는 물 건너갔다.

녀석은 그런 사실이 불만스러운지 우리를 째려보고 있었다. 아니, 밥맛 떨어지는 천쪼가리나 마네킹 재료로 쓰인 플라스틱 대신 우리가 그럴싸한 먹이로 느껴진게 분명했다. 녀석이 이를 드러내는 순간 우리들에 의해 '늑대의 썩소'라고 불리는 표정 아닌 표정이 지어졌다. 불이라도 붙은 듯한 눈빛과 찢어진 아가리가 매치되자 오금이 저릴듯 괴기스러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바, 발사준비."

순간 떨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저도 모르게 조소했다. 배치 된지 고작 1달된 남팀장이 저는 안 떨고있어요~ 하는게 보였다. 병신. 그러나 나는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듯, 자연스레 석궁의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했다.

크르르르르르릉!

퓨슝!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다리를 구부렸을때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발사했다. 장력에 의해 늘어났던 현이 울리며 쿼렐들이 마치 미사일처럼 허공을 갈랐다.

깨갱!

역시 개는 개인가. 놈은 구부렸던 다리를 펴기도 전에 바로 고슴도치가 되서 뒹굴거렸다. 놈은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그대로 엎어져서 사지를 떨었다. 아싸.. 이걸로 오늘 일은.

빡!

이런 썅!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개새끼 누구야? 하고 뒤를 쳐다보는데 비를 맞으면서 날 야려보는 눈초리가 눈에 띄었다.

남팀장이었다. 녀석은 손에 주먹을 쥔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너. 내 지시도 없는데 왜 쐈어?"

"......."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사람들이 슬슬 눈치만 보는게 눈에 띄었다. 기가 막혔다. 남팀장 이 니미럴 년. 그래도 니가 대가리가 이거지? 기분이 더러웠다. 게다가 나만 쏜 것도 아니고 다 쐈잖아?

"월래, 저 지옥견이 도약하기 전에 무조건 제압해야 되거든요."

"그게 교범에 있나?"

이 개호로 같은 새끼가. 당연히 교범에 그 따위 게 실려 있을리가 없잖아! 무슨 요괴도감도 아니고 그 안에는 문자 그대로 당연한 얘기 아니면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얘기만 쓰여있다. 근데 그걸 가지고... 마음 같아서는, 이 씨발새꺄. 조까! 라고 하고 싶지만.

"아닙니다."

난 고개를 수그리고 땅바닥만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넌 니 맘대로 하냐고! 어? 그리고 다른 새끼들도 마찬가지야!”

내 쪽으로 쏠리는 듯 하던 화살이 자신들에게도 쏠리자, 녀석들은 다들 고개를 박으며 딴청을 피웠다. 월래 이런 일에는 팀장도 대충 눈 감아줘야 하는데 갑자기 게거품을 무니까 다들 당황한 것 같았다.

“너 복귀하고 나면......”

눈과 목에 힘을 있는대로 주면서 뒷말을 이으려 했다. 그러나 놈의 눈이 갑자기 머그잔 바닥처럼 커졌다.

“팀장님!”

“준호야!”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난 있는데로 힘을 실어서 빠르게 돌려차기를 먹였다.

퍽!

아이고 내 다리! 어찌나 세게 걷어찼는지 몸이 완전히 홱,하고 돌아가며 그대로 자빠졌다. 하지만 잠시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고 바닥에 처박히면서도 눈깔을 부릅뜬 개가 보였다. 난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워서 도장이라도 찍듯이 내 전투화로 머리통을 찍었다.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여기서 제대로 끝장을 못 내면 내가 죽음이다. 퍽!

퍽! 퍽! 통증을 무시한 채 찍어누르는 발뒷꿈치가 죽은 개의 대가리에 꽂힐 때마다 축늘어진 몸이 흔들렸다.

“야. 그만해. 벌써 뒈졌겠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 나는 성진이의 목소리를 듣고도 눈을 떼지 않았다. 발밑을 보니 눈이 터져서 역겨운 누런 물이 줄줄 세고 있었다. 다시 뛸 수는 있어도 제대로 보지도 못할 터였다. 걸레가 된 얼굴. 몸뚱아리. 그러나 난 다시 한번 발을 들었다가 머리를 찍었다.

퍽!

콧잔등이 뭉개지는 소리가 빗소리와 섞여서 스산하게 들렸다. 그리고 난 비로소 뒤를 돌아봤다. 주저앉은 남자가 보였다. 여전히 망령처럼 서있는 다른 녀석들도 보였다. 방금전 내가 돌려찰 때 꽤나 놀랐는지 벙 쩌있는 남팀장의 병신 같은 면상이 잘 보였다. 난 씨익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야. 그거 니 면상 때문이잖아.”

사람들이 슬슬 퇴근 준비를 하고있는 탈의실. 사람들은 등 뒤에 박은 서울시청 악령퇴치1팀이라는 글씨만 빼면 전경복과 다를바 없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놈팽이 하나와 나도 슬슬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비쩍 마른 홀쭉한 얼굴에 피어싱까지 박은 형준이 놈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날 본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도무지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면상 때문에 그놈이 날 싫어하면 도대체 저 놈은 왜 내버려 두는건가?

“오늘도 봐봐. 니가 남팀장 보고 쪼갰잖아.”

“마지막에?”

“아니! 말고!”

녀석은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었다. 나도 답답했다. 더불어 얘기하기가 귀찮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탈의실의 내 락커룸에 비에 젖은 내 옷을 대충 걸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하루만 지나도 냄새를 독하게 풍기게 되겠지만 지금 처리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럼 언제?”

“아. 오늘 잡은 개새끼 보고 남팀장 쫄았을 때.”

“아.”

난 짧게 응수하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 많은 인간들 중에서 찍힌게 내 얼굴이라니. 할 말이 없다.

“나 참나. 그게 어제 오늘 일 인줄 아냐? 남팀장이 너 벼른지 꽤 됬단 말이야.”

응? 난 그 말에 의아한 얼굴로 녀석을 보았다. 왠지 모르게 철딱서니 없는 꼬맹이를 보는 것 같은게, 한 대 먹여주고 싶었다.

“너 맨날 남팀장 하는 것마다 무시하잖아. 그래서 그 새끼 너한테 꽤나 꼴 받아있었다고.”

“내가 언제?”

“항상.”

“........”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억울하다. 내가 그 새끼가 뭐라고 무시한 티를 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어설픈게 맘에 안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 역겨워 못 버틸 수준은 아니다. 충분히 참아줄 수 있다는 거다. 아니. 못 참았더라면 지금까지 남아있지도 못했을 거다. 근데 그 새끼는 날 그렇게 보고 있었다니.

엿 같다.

“어이~준호오~ 오늘도 사고쳤데매?”

씨발. 난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줄줄이 늘어선 락커룸 사이로 우리가 입는 정복 앞섬을 풀어헤친 사내가 나타났다. 얼추 180은 넘어보이는 키. 바짝 깎은 머리카락. 입가에 걸린 미소. 냉소적인 반질반질한 면상. 우리 팀의 선배이자 개자식인 박현상이었다.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난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말을 억지로 쑤셔 넣으면서 일부러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형준이 놈이 눈치를 살살 보며 자기 옷을 정리했다.

쾅!

그 순간 박현상이 내 옆의 락커룸을 주먹으로 찍었다. 그리고 나와 반대로 실실 쪼개며 말했다. 물론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어이. 씨발새꺄. 너 표정관리 안되냐?”

“아닙니다.”

“하긴 월래 넌 개새끼니까. 넌 씹새끼야. 니가 개꼴통 짓해도 니가 안갈리니까 그래도 되지? 응?”

순간 녀석이 손등으로 내 뺨을 툭 건드렸다. 순간 힘없이 늘어진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 그리고 오늘 일이 처음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조용히 살자고 했잖아.”

촥. 소리가 난다. 이번에는 손등이 아닌 손바닥이다.

“맨날 주의를 주고. 훈육을 해도 안되고. 너 진짜 뭐하는 새끼야? 응? 이 꼴통 곤조 새끼야.”

짝! 뺨에 손바닥에 달라붙는다. 고개가 돌아간다. 난 내 손이 올라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눈치만 살살보면 다 될 것 같지? 어?”

짝! 한방 더. 턱이 제대로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돌린 거지만.

“이 암캐 보지나 햝을 새끼야. 내가 1팀 2년차에 1달도 안된 핫바리 팀장한테 갈려야 되겠어? 어?”

따귀 두 방만에 바로 본론이 튀어나왔다. 녀석도 퇴근시간에 별로 길게 끌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이 집에 갈 시간 이라는게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퍽!

안심한 순간 배때기에 바로 주먹이 들어왔다. 난 순간 서서 버틸까 하다가 락커에 한팔로 기댔다. 이거 한 방 맞았다고 주저 앉는건 오버였다. 이정도가 적당했다. 녀석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어쭈......하면서 하이에나 같은 표정으로 날 봤다.

“새끼. 좆도 안아프게 때렸는데 아픈 척은. 씨발. 오늘 니가 앞에서 재롱 피워서 봐준다. 대신에 담에 걸렸을때 한번 더 해봐라. 재롱잔치 하다가 제삿밥이나 처먹게 해줄테니까. 알았냐?”

“예.”

녀석은 그 말만 하고는 휘청휘청 사라져버렸다. 형준이 놈은 그녀석이 가자, 내 쪽으로 다가왔다.

“괜찮냐?”

난 대답 대신 중지를 치켜들어올렸다. 이런 새끼한테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녀석은 순간 울컥했는지. 야! 라며 한소리 하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닫아버렸다. 내가 녀석의 눈을 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눈 안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이런 순간에는 이런 눈깔이 잘 먹힌다는걸 알고 있다. 녀석은 금새 꼬리를 말았다. 그리고 툴툴 거리면서 씹새끼. 내가 다시는 얘기하나 봐라. 은혜도 모르는 새끼. 하면서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난 순간 저녀석이 도대체 무슨 은혜를 베풀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나한테 위로를 건네다 되려 퍽큐나 처먹을 정도로 나한테 잘못한 적도 없는 놈이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뛰어가서 친한 척 미안하다고 말할 일은 없었다. 그럴 가치도 없는 새끼였다.

. 난 그리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청바지. 회색 티. 남색의 모자. 그리고 패딩점퍼. 등 이 날씨에 가장 흔한 복장이었다. 난 그동안 꺼낸 폰의 메시지 함을 확인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사람한테서만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나마 한 명이라도 꼬박꼬박 문자를 보내주는 걸 반가워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한 사람말고는 쓰잘데기 없는 친한 척을 할 인간도 없다는 걸 슬퍼해야 하는 걸까. 그런 헛된 생각을 하며 나도 슬슬 퇴근을 준비했다. 가져오는 물건도 없고. 가져갈 물건도 없었으므로 손은 가벼웠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어깨는 무거웠다. 어느샌가 탈의실에 난 혼자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목구멍까지 열이 확 오르는걸 느꼈다.

꽝! 소리와 함께 내 주먹이 락커와 충돌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zmzo

2010.04.20 01:40:53
*.174.1.209

ㅋㅋㅋ.. 욕이 인상적이네요

슈휀

2010.04.30 18:37:30
*.10.216.127

연재물인가요? 재미있는 설정이 버티고 있는 듯한데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욕은... 정말 인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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