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도시 - 비 내리는 밤(2)

조회 수 3043 추천 수 0 2010.05.11 02:44:23

 

 앗! 이거 댓글 달아주시는 분도 있구나... 하고 감동했습니다 ㅠ.ㅠ 한동안 방황과 시험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는 미루지 않고 열심히 이어 나갈렵니다.

 

(2) 비 내리는 밤.

내게 있어 하루하루는 비슷하다. 싸구려 액션 영화를 쉼 없이 재방송하는 영화채널처럼,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된다. 오후 2시에 초자연현상관리본부(超自然現想管理本部)라는 이름만 그럴싸한 곳에 출근한다. 사실 그 정체는, 을씨년스러운 십 몇 년은 묵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거기서 저녁 6시까지, 왜 해야되는지 모르는 청소나 쓰잘데기없는 서류 작성을 하거나, 때로는 외판원 흉내를 내며 도시 방방곡곡에 부적 돌리기 같은 일을 한다. 그리고 저녁 6시전에 식사를 마치고, 분담된 조에 따라서 도시를 순찰하거나, 혹은 신고가 들어오면 지역으로 출동해서 문제를 처리해준다. 그리고 12시가 되면 그때 출근하는 또 다른 팀과 교대를 하고, 퇴근한다. 아, 틈틈이 ‘선배’라고 깝치는 쓰레기들의 동네북이 되어주거나 갈굼을 먹는 것도 일과라면 일과 랄 수 있다. 그렇게 일들은 단순하고, 지루하며, 짜증나고, 가끔은 오늘밤처럼 위험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기서 일하다 죽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걸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나처럼 여기서 일해야 하는 사정이 있는 놈들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이 일을 마치면 집에 가서 푹 쉴 수 있는 놈들에게는 이정도면 무난한 일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쉬지도 않는다. 또 일을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일할 장소로 가기위해서 지하철의 좌석에 앉는다. 앉자마자 피로가 몸을 짓누르며, 저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평소는 그냥 힘 뺄 일이 없어서 괜찮은데, 오늘처럼 재수없게 사람 피곤하는 일이 겹치면 꼭 이 꼴이다. 게다가 쌀쌀한 바깥 날씨와 다르게, 이 안은 그래도 난방이 되는 통에 잠이 더 쏟아진다. 눈앞에 맞은편 좌석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노숙자들이 서로 어깨를 대고 졸고 있다. 이곳 구(舊)서울의 지하철 운행시각이 신(新)서울에 비해 훨씬 길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오밤중에 역내나 다른 곳에서 벌벌 떠는 것보다 지하철이 훨씬 낫다. 그래서 노숙자들이 자연스레 지하철을 점거했고, 자연스레 민간인들이나 여자들은 비싼 돈 주고 택시를 타거나, 역시 장 시간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그래서 결국 이 시간에는 노숙자 아니면 나처럼 수상쩍은 인간들 밖에 안남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들로만. 기막힌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야. 이 씨발놈아.”

반 정도 술에 취한 목소리와 함께, 서늘한 금속이 뺨에 닿았다. 난 잠이 달아났지만, 여전히 졸린 듯한 표정을 유지하며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노숙자들이었다. 옷은 땟국물에 쩔어있어 썩 보기 안좋았다. 그리고 다들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롯데마트 로고가 붙은 모자를 눌러썼다. 모두 셋이었다. 덩치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중학생 뻘이었다. 놈들은 모자란 위압감을 나에게 겨누고 있는 기세 등등한 군용대검 하나로 커버하고 있었다. 난 멍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앉아있던 노숙자들은 분명 깼을테지만 조는 척 하고 있었고, 다른 승객들은 볼 필요도 없었다. 좌석에 길게 눕거나 바닥을 뒹구는 술꾼들에게 뭘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셋 셀 동안 지갑 천천히 꺼내.”

왼쪽에 있는 삐쩍마른 놈이 나름 음산하게 협박했다. 나는 속으론 좆까. 라고 하고 있었지만 멍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도, 돈 꺼내라고 씨,씨,씹새야!”

오른쪽에 있는 놈은 말까지 더듬었다. 곰처럼 둥근 얼굴이었다. 대한민국은 역시 위대하다. 이런 거지새끼까지도 먹여살리다 못해 돼지처럼 살까지 찌우다니.

“말귀 못알아듣냐? 좆만아? 씨발. 돈 내놓으라고.”

중간의 놈은 나름 겁준답시고 째진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아마 이놈이 칼 가지고 대장 행세를 하는 모양이었다. 병신 둘에 쪼다 한 마리라. 오늘은 운 좋은 일이 연속인 모양이다.

“도, 돈이요? 여기 다 드릴게요”

난 겁에 질린 척 호주머니를 뒤졌다. 중간의 놈이 웃으면서 지껄이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봐라. 여기서 하면 된다고 했잖아. 걸릴 일도 없고. 맞다. 나도 그래서 여기가 좋다.

퍽!

아주 자연스레 내 다리가 중간 놈의 사타구니를 직격했다. 힘준답시고 다리를 그렇게 벌리고 있으면 안 좋은 꼴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다음 아주 간단했다. 중간에 놈이 욱욱거리며 고개를 숙인 동안에 바로 일어선 뒤, 녀석의 머리를 깎지 낀 손으로 누르며 바로 무릎을 쳐올렸다. 느낌이 왔다. 모르긴 몰라도 코피가 터졌거나 이빨이 나갔을 것이다. 나머지 두 놈은 주춤거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생각대로였다. 사람 패는게 익숙한 놈들이 아니었다. 난 피식 웃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돈 달라고?”

“어.어....”

비쩍마른 놈은 그나마도 눈치가 빨랐던 모양이었다. 그새 다른 칸으로 쿵쿵거리며 달려갔다. 곰같이 생긴 놈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난 주저없이 다가가서 바로 스트레이트를 먹였다. 유감은 없다. 뒤탈을 남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대로 차고, 찍고, 올려치는 익숙한 몸동작이 펼쳐진다. 녀석은 그대로 바닥을 뒹굴며 끙끙거렸다. 그러고나서 난 바닥에서 코를 부여잡고 뭔가를 찾는 쪼다를 내려다 보았다. 놈이 찾고 있는 칼은 튕겨나가서 좌석에 떨어져있었다. 주워들고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칼은 당연히 더러웠다. 모양만 그럴싸하지 시장가서도 구경 할 수 있는 싸구려물건이다. 어디서 주워왔을까? 모른다. 노숙자들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놈들은 옷 말고는 술밖에 없는 놈도 있고, 어떤 놈들은 온갖 것을 다 주워다 모은다. 아마 그런 물건들 중 하나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놈이 이걸 줏었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훔치거나 뺐었을 것이다.

칵!

내가 놈의 옆에 다가가서 칼을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힘이 제법 들어간 모양이다. 칼끝이 미끄러지지 않고 살짝 들어갔다.

“이거 찾냐?”

녀석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올려다보는데 입에서는 손을 못 떼고 있다. 난 줄곧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지게 만든 말을 내뱉었다.

“돈 내놔.”

녀석이 힘겹게 입에서 손을 땠다. 손 떼자마자 침과 피가 느릿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녀석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됴, 됸 엄써요.”

“그래?”

난 이거 불쌍해서 어쩌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칼을 뽑아서 겨우겨우 녀석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한쪽 손 옆에 대었다.

“그럼 별 수없지. 나올 때까지 하나 하나 잘라야지.”

“저, 저기 잠깐만요.”

뒤에서 그 곰같은 놈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난 더 때릴까 하다가, 그 놈이 쓰러져 있는 놈에게 다가가서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는걸 보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번호저장그룹 중에서 이름 하나를 선택해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가 가고 누가 받았다. 받자마자 꺼억. 하고 트림 소리부터 들렸다. 멋진 반응이었다.

“장군 아저씨.”

“어! 이거 준호 아니야.”

딱 들어도 술 취한 듯한 목소리다. 언제, 어느 시간대에 걸어도.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이 동네 노숙자들 사이에서 왕초노릇을 한다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딴게 아니고, 아저씨 내 구역에서 어떤 새끼들이 칼들고 와서 저한테 삥을 뜯으려 하더라고요.”

“.......”

숨막히는 침묵. 나는 주저 없이 다음 말을 이었다.

“뜨내기 같은데. 아저씨가 손 좀 봐주세요.”

“이런 좆도. 그런 빨갱이 같은 새끼들이 있나. 미안하다. 미안해. 요새 불경기라.....몇 놈인데?”

“세 놈인데. 다 애새끼네요. 하나는 비쩍 말랐고, 한 새끼는 이빨이 나갔어요. 그리고....”

 난 내게 돈을 내밀며 부들부들 떨고있는 곰같은 놈을 보았다. 불쌍한 눈빛. 이런 놈들은 쓴 맛을 봐야 자판기 캔 커피 쏟듯이 눈물과 똥오줌을 쏟는다. 하지만, 이놈이 자기 뒤의 놈을 보호하려는 듯 하는게 꽤 맘에 걸렸다. 이런 패거리들에게 의리는 음식물 쓰레기만도 못한데. 나는 마음이 좀 바뀌어서 말했다.

“아. 그리고 곰 같은 놈은 좀 봐주세요.” 

“그래. 알았다. 어이쿠.. 이거 미안해가지고..”

“괜찮아요. 살다보면 그럴 수 도 있죠.”

아저씨는 내 평안한 목소리를 보고는 적이 안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물었다.

“그럼 박 사장 한테는 얘기 안하는거지?”

“그럼요. 끊을게요.”

“그려.”

뚝-전화가 끊기고, 난 호주머니에서 껌 하나를 꺼내서 질겅질겅 씹었다. 난 내밀어진 검은 봉투를 챙겨서 호주머니에 쑤셔놓었다.  곰같은 놈이 자꾸 눈치를 본다. 뭐라 말해줘야 할것 같다. 

“야. 앞으로 이렇게 살지마라.”

 "......."

 "야밤에 지하철 타는 새끼들은 노숙자 아님 다 또라인거 모르냐? 씨발. 그러다 칼 맞어 이 새끼야."

 "......."

 "에라... 모르겠다. 뒤는 알아서 해라."

 녀석은 대답은 못한채 잔뜩 두려워하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난 내 입으로 제멋대로 지껄여놓은 주제에 머쓱해져 코를 스윽 하고 훔쳤다. 난 이제 겨우 18살이다. 근데 말해놓은 꼬락서니는 꼭 좆같은 꼰대 같았다.  바깥에서는 세상에 쥐여 살다가, 집에서만 큰 소리 치는 그런 노친네들. 썅! 기분이 더럽다. 게다가 이 새끼도 겉으로는 늘어진 개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이런 썅새끼 하며 욕을 하고 있을꺼다. 그렇게 생각하니 박현상에게 처맞으며 열을 삭히던 내 모습이 겹쳐지는 것 같다.

씨발. 진짜 오늘은 계속 좆같은 일 연속이다. 정말로. 그때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휴대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을 여니 창준이 형 번호였다.

“오는 중이냐?”

“어? 어.”

별일이다. 형은 도통 재촉하는 일이 없다. 어차피 내가 제 시간에 올 줄 알기 때문이다. 난 궁금해져서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일단 와라.”

뚝- 전화가 끊겼다. 정말 싱거운 양반이다. 하지만, 오늘밤 내가 신경써야 할 일이 에법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설상가상? 맞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일들이 떼거지로 몰려온다는 느낌에서만은 벗어날 수 없다.


슈휀

2010.05.12 09:16:27
*.10.216.123

역시 연재였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초반에 부적 나눠준다는 대목에서 웃었어요^^

Bomberic Angel

2010.05.13 21:43:36
*.200.3.11

오타지적.

Ctrl + F  해보셔서

'에법' 이라는 단어를 '제법'으로 고치는게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소요유

2010.05.15 06:25:24
*.161.13.202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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